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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암바니 형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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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암바니 형제 <상>

입력
2010.09.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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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를 제쳤다.’ 2007년 10월경 세계인의 이목이 인도의 한 남자에게 쏠렸다. 주식가치 상승으로 무케시 암바니(53)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갑부 순위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재산은 1조3,000억 루피(약 29조8000억원). 그의 동생 아닐 암바니(51)의 재산도 9,000억 루피에 달했다. 형제는 인도 최대의 그룹 릴라이언스의 2세들. 이후 주가하락으로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암바니 형제는 여전히 손꼽히는 억만장자다. 2010년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무케시는 세계 4위(290억 달러) 갑부이고, 아닐은 36위(137억 달러) 부자다.

창업주 디루바이 암바니

형제의 아버지는 릴라이언스그룹의 창업주인 디루바이 암바니(1932-2002). 인도 구자라트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디루바이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16세에 형이 일하고 있던 예멘의 아덴으로 건너가 다국적 정유회사 셸(shell)의 주유원으로 일했다. ‘셸 같은 거대 기업을 이루어보자’고 마음 먹은 것도 그 때라고 전해진다.

10년간 아덴에서 생활하면서 사무직으로 승진하고 결혼도 해 아들도 낳았지만, 디루바이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26세(1958년)에 인도 뭄바이로 돌아와 열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종자돈 5만루피(150만원)로 릴라이언스커머셜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차린 것. 그 회사가 오늘날 ‘인도를 삼킨 기업’으로 불리는 인도 최대의 그룹 릴라이언스다.

“크게 생각하고, 남보다 앞서 생각하라” 디루바이가 생전에 입에 달고 다녔던 이 말처럼 그는 사업을 확장시켜 시장을 선점했다. 무역업으로 시작했던 회사는 2년 뒤 섬유산업에 진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체 개발한 브랜드 ‘비말’은 대히트를 쳤다. 77년부터 80년까지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인도 전역에 비말 대리점이 세워졌을 정도.

방직업계 1위에 올라선 릴라이언스는 이후 석유화학 정유 석유가스 등 산업에 진출하며 계속 몸집을 불려나갔다. 90년대엔 130년 역사의 인도 최대 그룹 타타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현재는 릴라이언스의 시장가치가 5조루피로 타타(3조루피)를 제쳐 명실상부한 최대 그룹이 됐다.

디루바이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2007년 ‘구루(Guruㆍ힌두교의 스승, 권위자)’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히트를 치기도 했다.

인도판 ‘형제의 난’

“돈을 버는 일은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나를 진짜 흥분시키는 건 내가 이루는 성취 그 자체다.” 디루바이가 평소 강조하던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2002년 중풍으로 쓰러져 사망한 디루바이는 재산에 관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무케시와 아닐,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디루바이의 자녀는 4남매였는데 두 딸과 부인은 그룹 경영에 관심이 없었고 당시 장남인 무케시와 둘째 아닐이 회사를 맡고 있었다. 뭄바이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무케시는 미국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MBA)을 1년 다니다 인도로 돌아와 24세(81년)부터 회사에서 일해왔다. 동생 아닐은 뭄바이대에서 기초과학을 전공한 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역시 24세(83년)에 릴라이언스 공동 최고경영자로 입사했다.

형제는 86년 심장마비 이후 몸이 불편해진 디루바이를 대신해 경영을 맡았고, 2000년대 들어 통신 유통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등에 진출하며 그룹을 더욱 키워갔다.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 경쟁업체를 따돌리는 경영 방식과 수완은 아버지를 그대로 빼 닮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하지만 아버지의 사망은 결국 자식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형제의 난’인 셈. 형제는 서로를 공격ㆍ비방했고, 그 때마다 덩달아 인도 증시도 출렁였다. 릴라이언스그룹의 불안이 인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났기 때문에 만모한 싱 총리와 치담바람 당시 재무장관이 측근을 보내 중재에 나섰을 정도.

결국 2005년 어머니의 중재로 릴라이언스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무케시가 그룹 내 핵심기업인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즈를 비롯하여 정유 석유화학 유통 석유가스 개발 부문을 갖고, 아닐은 통신 금융 전력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둘 사이에는 릴라이언스 상표권을 둘러싼 분쟁, 그룹 자회사간 가스공급 가격 시비 등 갈등이 이어졌다.

지난 5월 형제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2006년 서로의 사업 분야에 침범하지 않기로 불가침 협약을 맺었지만, 워낙 서로의 사업이 얽혀있었던 터라 이번에 불가침협약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과연 8년간 지속되어 온 ‘형제의 난’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을까. 세계 언론은 지금도 두 형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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