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불편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찮다 못해, 약탈이 인간의 본성이라니.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는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를 '약탈하는'이란 뜻의 'rapacious'로 바꿔 패러디한 것. 책을 읽어가다 보면 더욱 불편해진다.
"진보는 신화이고, 자아는 환상이며,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나아가 인류의 진보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헛된 믿음을 가능케 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뿐 아니라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부터가 억지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種)이라는 점"이라는 데서 출발해, 서구 문명의 토대인 휴머니즘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여기서 휴머니즘이란 진보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이 발달하는 과학지식을 활용해 동물은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존 그레이는 전작 (1998)과 2002년 발간한 이 책, 그리고 최근작 (2007)를 통해 기독교와 계몽주의, 공산혁명 같은 거대한 정치기획, 오늘날의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유토피아주의의 폭력성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다. 이상향에 맞게 세계를 바꾸겠다는 시도는 이상향에 배치되는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내리누르는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런 폭력적 유토피아주의는 '인간 종 중심주의'에 기반한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휴머니즘을 "기독교 신화의 부패한 조각들에서 나온 세속 종교"라고 단언한다. 또 유럽의 철학이 기독교식 인간관에 진보와 계몽이라는 휴머니즘의 가면을 씌워 그 이미지를 계속 재생하는 '가장무도회'를 벌여왔다고 비판한다. 그의 눈에는 지구를 아끼자는 '녹색사상'조차도 휴머니즘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인데, 그 바람이 이뤄지려면 생명애를 강조할 게 아니라 "인간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대안적 인간관을 노자에서 구한다. 책의 원제 '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짚으로 만든 개: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 관한 생각들')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에서 따왔다. 짚으로 만든 개는 고대 중국의 종교의식에서 제물로 사용되던 것인데,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는 숭배의 대상이지만 의식이 끝나면 내팽개쳐진다. 인간 역시 언제든 내팽개쳐질 수 있는 '지푸라기 개'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저자는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 데 있지 않고 비극적인 우연성을 헤쳐나가는 데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냥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짧은 글들을 엮어 술술 읽힌다. 내용도 학술서라기보다는 잠언집에 가깝다.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은 구원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같은, 밑줄 긋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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