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년 간 섬을 지켜온 숲이 쑥대밭이 돼 가슴이 찢어집니다.”
70평생을 서해바다 외딴 섬 외연도에서 살아온 김만진(76)옹은 3일 갈기갈기 찢겨 뿌리째 뽑힌 마을 서낭림을 보는 순간 털썩 땅에 주저 앉아 울먹였다.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태풍 곤파스는 충남의 명품 숲인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의 천연기념물 상록수림과 태안군 안면도의 안면송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날 오후 피해 조사에 나선 공무원과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뒤쪽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룬 상록수림의 처참한 모습에 망연자실했다.
지름 10㎝ 이상의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등 상록수 680여 그루가 자생해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 중 절반이 넘게 가지가 잘렸고, 40여 그루는 아예 뿌리째 뽑혔다. 뿌리가 다르면서 가지가 연결돼 출입문의 형상을 만들어 이곳을 지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가진 연리목의 ‘사랑나무’도 뿌리가 드러나고, 연결 가지가 잘려나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상록수림 관리인 남궁호재(42)씨는 “상록수림 80%가 뿌리가 뽑히거나 중간 부분이 부러져 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태풍 곤파스는 안면도 일대에서 집단 자생하는 7,000여 그루의 안면송을 집어삼켰다. 안면송이 대규모 군락을 이뤄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안면도수목원에서는 150여 그루가 뽑히는 피해를 입었다. 안면송은 경복궁, 창덕궁을 비롯해 대형선박 건조 등에 사용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소나무다. 현재 안면도에는 수령 80∼120년생 14만1,000여 그루가 서식하고 있다.
태안군은 안면송 주요 군락지 위주로 조사했지만 섬 전역에 대한 완벽한 현장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태풍 곤파스는 도내 주요 문화재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백제시대 고찰인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전(보물 제143호)과 명부전(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 무량수각 등의 지붕이 크게 훼손됐다.
안면도의 모감주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제138호)도 자생하는 400그루 중 50여 그루가 강풍으로 뿌리가 뽑혔다.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69호ㆍ90그루 자생)의 동백나무도 강풍으로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천리포수목원은 수천여 그루의 나무와 화훼류가 손상을 입었다.
안면도= 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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