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전통양식의 국새는 민홍규(56) 전 국새제작단장의 사기극으로 밝혀졌고 이에 놀아난 정부나 나라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다. 더욱이 민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따낸 국새 장인의 명성을 이용, 개인적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국새 전통비전은 없었다
민씨는 2006년 국새제작 공모 당시 '600년 전통의 비전(秘傳)'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해 당선됐다. 자신이 1대 국새 제작자인 석불 정기호 선생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정통 전각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증거로 석불의 회고록으로 알려진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제시했다. 회고록에는 석불이 제1대 국새 제작자이며, 민씨가 유일하게 그 계보를 이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경찰이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색한 결과 놀랍게도 석불은 1대 국새 제작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또 민씨는 석불의 제자도 아니었다. 민씨가 국새 제작 권위자로 인정받기 위해 석불 회고록 내용을 조작, 1대 국새 제작자를 가짜로 내세우고 자신을 그의 후계자로 치장한 것이다.
실제 민씨는 자택 인근 서울 미아리 뒷산에서 굴을 파 주물 연습을 해볼 정도로 전통양식의 주물에는 문외한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대(代)가 끊긴 데다 수요도 거의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양식으로 국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했다.
금도장 누구에게 왜 제공했나
경찰조사결과 민씨는 2007년 12월 4대 국새를 제작하고 남은 금으로 금도장 4개를 만들어, 두 개는 정치인과 여성프로골퍼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1,500만원 안팎에 일반인에게 팔았다. 더욱이 민씨는 이전에도 정치인은 물론 노무현(2007년 초) 노태우 전 대통령(1989년)과 이명박 대통령(2004년)에게 금도장 또는 옥돌 도장을 만들어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민씨는 정치인과 전현직 대통령에게 건네진 도장들이 모두 "돈을 받고 주문 제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국새 제작 후 남은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정ㆍ관계 로비의혹은 정황 상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전ㆍ현직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도장에 대해서는 실제 전달됐는지 여부도 불확실하고 뇌물로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건네졌다는 도장도 3만원짜리 옥돌도장으로 제3자가 만들어달라고 해서 제작했으나 실제 이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조사에서 금전제공 없이 도장이 유력인사에게 건네졌거나 민씨는 이들과의 친분을 사업에 이용했다는 정황 등이 나올 경우 대가성 여부가 논란이 될 공산이 크다.
다이아몬드 봉황국새의 실체
지난해 1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대한민국 다이아몬드 봉황국새'라 명명된 판매용 국새가 전시됐다. 민씨가 만들고 책정했다는 이 국새 가격은 40억원. 백금과 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는 게 초고가의 이유였다. 백화점은 이 국새를 금고에 보관하며 관심을 보이는 일부 고객에게만 공개했다. 전시기간이 끝난 뒤 판매용 국새는 '일본기업인에게 팔렸다', '은행 비밀금고에 있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한 채 종적을 감췄다. 이런 와중에 국새 의혹을 제기한 국새제작단 주물 담당 이창수씨가 봉황국새는 자신이 제작했으며 인조보석이 사용돼 제조원가가 200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다.
경찰이 지난달 27일 민씨의 경기 이천시 공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판매용 옥새를 발견, 추궁한 끝에 황동(놋쇠)과 니켈, 인조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만들었다는 민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백금과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도 귀금속으로 만들었다며 40억원이라고 가격을 정한 것은 사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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