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의 바 커피바K. 문 여는 오후 7시보다 조금 일찍 이 곳에 들어서면 바텐더들이 얼음조각을 튀겨가며 둥글게 얼음을 깎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얼음공장에서 납품받은 단단한 육면체 얼음덩어리는 바텐더들의 능숙한 손에서 2~3분만에 지름 12㎝ 안팎의 동그란 아이스 볼이 된다. 이 아이스 볼은 온 더 락스 잔을 꽉 채워 위스키와 함께 서빙된다.
굳이 수고스럽게 얼음공을 깎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음이 최대한 천천히 녹는, 온 더 볼(온 더 락스가 아니다)로 위스키를 즐기기 위해서다. 작은 각얼음 여러 개를 쓰면 얼음의 표면적 자체가 넓고, 손으로 잡는 잔에 닿는 면적도 넓어져서 얼음이 빨리 녹는데, 그러면 도수가 낮아지는 대신 맛은 밍밍해지고 향도 억제된다.
온 더 볼은 특히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으로 커피바K,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바 등 극소수 바에서 사랑받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흔히 마시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달리 100% 보리를 원료로 써서 한 증류기에서 나온 원액을 오크통에 숙성시켜 만들어진 위스키다. 따라서 와인처럼 생산지마다 각각 다른 향과 풍미가 개성이다. 이 맛과 향을 공부해가며 진지하게 음미하는 애호가에게는 향미를 없애는 폭탄주나 온 더 락스는 참지 못할 일. 위스키 애호가 모임인 한국위스키협회 유용석 이사는 “싱글 몰트의 진면목을 알려면 노진 글래스(입구는 좁고 가운데가 넓은 잔)에 따라서 입안에 몇 초 머금었다가 넘기는 것이 좋고, 이것이 너무 독하면 냉각만 하고 빨리 묽어지지 않는 온 더 볼로 즐기라”고 권한다.
그래서 싱글 몰트 브랜드 맥캘란은 아이스 볼을 만드는 기계도 보급한다. 국내에 3대가 들어와 있다. 이 기계로 아이스 볼을 만드는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바는 마이클 잭슨(팝 황제가 아닌 몰트 전문가다) 리스트 13종을 포함, 국내 수입되는 몰트 위스키 대부분인 70여종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3종을 시음해 입맛에 맞는 몰트 위스키를 고를 기회도 준다. 커피바K는 오크통째 들여온 맥캘란 위스키가 있는 국내 유일한 바로 물을 섞기 전 진한 원액을 그대로 맛볼 수도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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