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를 타기 전이었다. 서울마리나 클럽&요트의 이승재 회장은 바람을 느껴보라 했다. 귓볼에 살랑대는 한강의 바람결을 느끼라 했다. 그럼 한강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올 연말 오픈을 앞두고 있는 서울마리나의 초청으로 한강에서의 요트를 체험했다. 서울마리나가 있는 곳은 여의도 서쪽 끝자락, 국회의사당 뒤편의 둔치다. 현재는 4층 규모의 클럽하우스와 요트 계류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서울마리나가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요트는 수상 계류장에 60여 대, 육상 계류장에 30여 대로 모두 90여 척이다. 마리나가 완공되고 요트가 이곳을 가득 메운다면 해외 유명 해양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마스트(돛대) 가득하게 장관을 이룬 마리나의 풍경이 서울에서도 등장하게 된다.
요트는 귀족 스포츠로 여겨져 왔다. 서양에서 요트는 여행과 스피드, 낭만, 우정, 사랑 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생애 마지막 스포츠’라고 한다. 또 얼마나 비싼 요트를 가졌느냐에 따라 부의 수준을 가늠하기도 한다.
우선 서울마리나에서 제공한 파워요트에 올랐다. 돛에 바람을 안고 가는 게 아니라 엔진 동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배다. 요트 안에는 넓고 아늑한 침대에, 화장실과 응접실까지 갖추고 있다. 강물 한가운데 배를 세워놓고 낚싯대 드리워놓고 새하얀 갑판에 올라 시원한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면 참 좋겠단 생각이 절로 난다.
배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마리나를 출발하자 마자 먼저 보이는 곳은 강 건너편의 합정동 절두산순교성지다. 국회의사당을 등진 요트는 녹음 우거진 밤섬을 스쳐 서강대교 마포대교 밑을 지나선 63빌딩을 지났다. 자주 봐왔던 곳들이지만 수면의 높이에서 올려다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강대교가 지나는 중도다. 거대한 성곽을 마주한 느낌이다. 중세의 고성 옆으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한강에서 요트가 오갈 수 있는 곳은 잠실 수중보에서부터 김포 앞 신곡 수중보까지 30여 km다. 공사가 끝나 내년 말께 굴포천이 뚫리면 요트는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로 나가 중국으로의 원행도 가능해진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한강 하구로 바로 나가 대동강 물길을 거슬러 평양 도심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압록강까지 내달려 위화도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마리나로 돌아와 이번엔 세일요트로 갈아탔다. 처음엔 동력을 사용해 강물 한가운데로 나갔다. 아무리 바람이 없어도 강물 한가운데에선 바람이 있기 마련이란다. 선장이 일행들에게 자신은 스키퍼(skipper) 역할을 할 테니 크루(crew) 역할을 잘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돛을 펴는 세일요트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혼자서 모든 조정이 힘들기 때문에 요트에 탄 다른 일행들이 함께 달라붙어야 한다.
세일요트의 돛은 보통 2개가 달려있다. 메인마스트에 걸린 큰 돛이 바람을 크게 받아 배에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이라면, 앞쪽의 작은 삼각형 돛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양쪽의 크루는 스키퍼의 지시에 따라 이 작은돛(지브ㆍjib)을 좌우로 펼쳐가며 배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물 한가운데까지 나간 요트는 뱃머리를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드디어 눈부시도록 하얀 돛을 펴기 시작했다. 2개의 돛이 펼쳐지자 선장은 뱃머리를 45도 가량 틀었다. 맞바람에 돛은 부풀어 올랐고 배는 그 맞바람을 맞으며 전진했다. 선장은 이처럼 맞바람을 맞고 전진하는 것을 태킹(tacking)이라고 했다. “아니 어떻게 맞바람에 배가 전진할 수 있느냐. 직접 보고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묻자 “비행기를 띄우는 것과 똑같은 양력의 효과”라는 더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바람을 받은 돛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비행기 날개처럼 한쪽이 곡선으로 부풀어 오르는데, 곡선 바깥쪽에는 공기가 빨리 흐르고, 안쪽엔 상대적으로 공기 속도가 느려진다. 그는 ‘유체의 흐름이 빠른 곳의 압력이 느린 곳의 압력보다 작아진다’는 베르누이 정리를 빌어와 “그래서 그 압력차에 의한 힘이 작용, 요트가 전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자세하고 오랜 설명에도 여전히 머리는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내 눈앞에서 요트가 바람을 맞으면서도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한참을 전진하다 요트의 방향을 바꿨다. 이번엔 순풍을 타고 달린다. 선장은 순풍의 질주를 자이빙(gybing)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브와 메인세일 사이의 슬롯(slot), 배 밑에 댄 용골인 킬(keel)의 기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점점 더 모를 복잡다단한 요트의 이야기다.
시선은 선장의 눈을 피해 하얀 돛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늦여름 장마의 검은 구름 사이로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복잡한 일을 잊기로 하니 마음은 금세 편해졌다. 서울도 이렇게 편하구나. 서울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한강의 여유를 느낀다. 바람이 참 시원했다.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서울마리나, 휴가 못간 사연 올리면 추첨통해 요트 승선권
서울마리나 클럽&요트는 연말에 문을 열 계획이다. 서울마리나는 완공에 앞서 시민들에게 한강에서 요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마리나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seoulmarina)에 휴가를 가지 못한 사연이나 한강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올리면 추첨을 통해 한강 요트 승선권을 제공한다. (02)423-7888
요트를 직접 운전하려면 요트 면허를 따야 한다. 전국에 요트 면허자는 약 2,000명 가량 된다. 서울 상암동에 요트 면허시험장이 있다. 강습을 거쳐 필기 실기 시험을 통과하는데 약 4일 가량 걸린다. 강습비 포함 약 70만원 가량 든다.
서울 외에서 요트를 체험하고 싶다면 제주 중문의 퍼시픽랜드를 추천한다. 바다에서 1시간 요트체험을 하는데 1인 6만원 선이다. www.y-tour.com (064)738-2111
요트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으면 경남 남해에 있는 남해군요트학교를 노크해보자. 요트 체험은 물론 입문 숙련 고급과정의 요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루 8시간씩 2일간 진행되는 체험과정은 이론교육과 초보 항해로 구성된다. 입문과정과 숙련과정은 각 3일씩, 고급과정은 2일이 소요된다. 체험부터 입문 숙련 고급과정까지 다 마치는데 모두 10일이 걸린다. 체험과정 2일의 강습비는 13만2,000원, 체험부터 고급과정까지 10일간 교육 받는 데는 모두 59만4,000원이 든다. 070-7755-5278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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