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씹어 먹었다구요?" 어느새 10년 전이다. 이윤기 선생과 2000년 7월 광주로 문학기행을 갔을 때 나눈 대화다. 기찻간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는 독학할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 장씩 외운 뒤 실제로 씹어 먹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모르는 영어 단어 나오면 사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휴대폰이나 인터넷부터 뒤지는 걸 보고는 안타까운 생각에 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아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진짜로 사전을 씹어 먹은 사람이 있다구요?"
며칠 전 이 선생이 별세한 뒤 집안에 흩어져 있던 그의 책들을 찾다가 를 꺼내 먼지를 털자, 아이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윤기 선생이 돌아가셨어." 아이들이 말했다. "아 그래서 인터넷 검색어에 떴구나. 초등학교 때 그 책 읽고 신들 이름 다 외웠었는데." "그 분이 사전 씹어 먹었던 사람이야…." 그렇다. 21세기 초입의 한국사회에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을 일으켰던 사람,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까지도 그 어려운 서양 신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게 만들었던 그 사람, 이윤기다.
하지만 그는 신화연구가이기 전에,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뽑힌 번역가였고, 더 전에 소설가였다. 1975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이후 20여년 간 번역에만 힘을 쏟다가, 80년대 우리사회의 담론을 주도했던 소설이 기운이 떨어지는 듯하던 90년대 중반, 다시 나타나 보란 듯 소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소설은 결코 황성옛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화 연구도 번역도 소설 쓰기도 그에게는 다 인간에 대한 탐구, 삶에 대한 탐구였다. 소설이 황성옛터가 아니라는 말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인간과 삶에 대한 탐구인 문학의 본령은 결코 변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느 책에 그가 딸과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 나온다. "아빠는 어쩌다 이런 돈 안 되는 인문학에 빠져 드셨어요?" 그는 대답했다. "돈 안 되는 인문학이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돈이 안 된다면 내가, 도둑질했단 말이냐?" 중학교 때부터 인문학이라는 바다에 빠져 고교도 작파한 그는 "문학은 청산가리"라며 열병을 앓던 문학청년 시절을 거쳐 소설가가 된 뒤 다시 더 깊은 인간 탐구를 위해 종교, 신화 공부로 나아갔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남들 카세트라디오, TV 싸들고 귀국할 때 700여권의 서양 원서를 구해 들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일부가 나중에 그의 손으로 번역돼 우리가 읽은 책들이다.
1999년에 그가 라는 책을 내고 인터뷰했을 때 들은 말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대인은 살고 소인은 쓴다고 하는데 나는 굳이 써놓기를 좋아하고 책을 묶어내니 아직도 소인인가 보다." 물론 겸양의 말이지만 기자가 기억하는 그는 사는 데도 대인이었다. 문장으로써 이름을 얻은 뒤에도 결코 몸을 곧추세우지 않았다. 그가 곧추세웠던 것은 그가 일생 추구한 언어였다. 그에게 "문학은 언어를 곧추세우는 일"이었다.
한동안 이 선생을 뵙지 못했다. 양평 작업실에서 나무 가꾸며 여전히 글 쓰며 지낸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 수목장으로, 자신이 돌보던 나무 밑으로 돌아갔다. 그의 책들을 찾던 중 이라는 에세이집이 나왔다. 선 굵으면서도 단어 하나하나 적확한, 지혜로우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글들이 '말의 강, 글의 강' '풍속의 강, 세월의 강' '신화의 강, 문학의 강'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는 그 강들을 건너, 저 너머 다른 강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