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태풍' 곤파스가 사실상 강한 바람만 선보이고 쏜살같이 동해로 빠져나갔다. 물폭탄으로 한반도를 수마(水魔)에 들게 했던 과거 태풍의 전형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이다.
곤파스가 왜 '바람폭탄'만 우세한 돌연변이 태풍이 된 것일까. 여기에는 쾌속선처럼 서해를 달렸고, 스포츠카처럼 한반도 동서를 가로지른 이동속도가 결정적이었다. 1일 밤 제주 해역에 도달했던 곤파스가 상륙지점인 강화도에 도착한 시간은 2일 오전6시35분. 당초 기상청 예상보다 무려 6시간이나 빨랐다.
당시 곤파스의 이동속도는 시속 50㎞. 이러다 보니 서해의 에너지를 빨아들일 시간여유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서해의 수온이 낮아 수증기를 빼앗겼다. 더욱이 이날 오전 10시50분 강원 고성군 동해로 빠져나가기까지 육지에 머문 시간도 불과 4시간15분밖에 되지 않는다. 육지에서도 제대로 물 에너지를 쏟아 붓지 못한 것이다.
곤파스가 이처럼 달리는 데만 급급했던 데는 한반도 대기환경 때문이다. 북서진하던 태풍은 서해상에서 편서풍의 영향으로 진로를 동쪽으로 틀면서 제트기류(초속 100m 이상의 강풍대)와 만나 급가속이 붙었다. 여기에다 중부이남에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가 태풍의 빠른 이동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원래 태풍은 크기가 크고, 이동 속도가 느릴수록 많은 비를 뿌린다. 실제로 2002년 강릉에 870.5㎜의 비를 뿌린 태풍 루사는 강풍반경 420㎞의 중형으로 시속 23~30㎞로 한반도 남부에 상륙, 시속 18~23㎞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최악의 물난리를 일으켰다. 이에 비해 삽시간에 한반도를 빠져나간 곤파스는 상륙 당시 강풍반경 180㎞의 소형인 반면 이동속도는 루사의 두 배 이상이었다. 이러다 보니 29일 최대 강수량은 141.5㎜(경남 산청)에 불과했고 태풍의 중심권이 지나간 서울은 51.5㎜밖에 안됐다. 당초 예보됐던 300㎜이상의 폭우는 어디에도 쏟아지지 않았다. 반면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52.4m(홍도)로 강도로만 본다면 10년 만에 최대강풍을 기록한 '매우 강한' 태풍이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