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정치에서 여야관계 문화가 바뀌고 있다. 대치와 충돌 대신에 대화와 타협이란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체제에서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최근 이재오 신임 특임장관까지 가세하면서 변화의 기운이 더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단 실종된 상생 정치의 복원이 기대된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일부에선 과거식 뒷거래 정치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야 간 대화 모색 기류가 뚜렷해지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은 많다. 대결도 있지만 그 속에서 뭔가 정치적 여운이 있다. 우선 이 장관의 행보부터 그렇다. 이 장관은 지난달 31일 복숭아 20상자를 들고 민주당 의원워크숍 행사장을 찾아 박 원내대표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그는 "야당 원내대표를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고 말했고, 박 원내대표도 "사전에 모든 것을 잘 얘기하자"고 화답했다. 박 원내대표는 1일에도 MBN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관과) 서로 잘 통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사청문회 정국이 어지러울 때 이 장관은 박 원내대표와의 통화에서 "차라리 내가 그만둘 테니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살려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선 벌써 두 사람이 여권과 야당을 잇는 막후 채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장관은 1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군소야당을 잇따라 찾아 "앞으로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박지원 두 원내대표 간 대화 무드는 갈수록 무르익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각각 정치를 배운 두 사람이 원내사령탑을 맡을 때부터 대화정치 복원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두 사람은 세종시 문제 등으로 파국이 예상됐던 6월 국회를 대화로 무난히 풀어냈다. 세종시 수정안 표결과 집시법 개정안 강행 처리 철회를 주고받으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분명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이다. 여야 대립이 치열했던 17대 국회와 비교해도 그렇고, 18대 국회 전반기와도 다르다. 때문에 앞으로 정국의 고비 때마다 이들의 정치력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면 여야가 물밑으로 서로의 편의를 봐주는, 부적절한 '담합'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엄존한다. 7월 말 김 원내대표가 "민주당 측의 요구에 (검찰과) 교섭해 한명숙 전 총리의 불구속 기소를 하게 하는 노력을 했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여야 간 '빅딜설'이 거론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여야 관계가 워낙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상생과 신뢰 쌓기를 위한 물밑 접촉은 필요하다"며 "다만 여야가 음성적 빅딜을 하거나 명분이 없는 물밑 거래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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