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 석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 중국에 자주 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발전상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 개혁ㆍ개방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에서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유도하는 중국의 역할도 긍정 평가했다.
북중 밀착과 미국의 추가 대북 금융제재로 동북아에서 한미 대 북중 대결 심화의 신냉전 구도를 우려하는 시각이 우세한 때에 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의외지만 긍정적이다. 북한이 폐쇄적 자력갱생 노선을 벗어나 개혁ㆍ개방에 관심을 갖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방중 전말을 잘 뜯어보면 마냥 환영하고 긍정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주목적은 경제난 타개인 듯
이번 방중의 주된 목적은 3남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한 중국의 동의 및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난 타개가 더 큰 목적이라고 볼 여지도 많다. 김정은 후계구도를 가시화할 노동당 대표자회 개최를 앞두고 3대 권력세습에 대한 중국의 동의와 지지가 급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한 내부 사정으로 보면 후계체제의 안정을 뒷받침할 물질적 기반 마련이 더 시급하다. 김 위원장은 그 해답을 중국에서 찾기 위해 3개월 여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2001년 상하이 방문 당시 '상전벽해' 발언을 비롯해 중국의 개혁ㆍ개방 성과에 부러움을 표시했지만 중국 지도부가 권하는 개혁ㆍ개방 정책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방중에서는 달랐다. "대외협력이 경제발전에 필요하며 국가발전을 가속화하는 필연적 경로"라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개혁ㆍ개방 이후 중국이 신속한 발전을 하고 곳곳에 생기가 넘친다"면서 조화사회 건설을 위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이 "정확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화법으로 이렇게까지 중국의 개혁ㆍ개방을 상찬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는 중국 동북지역 중심 도시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북지역과 조선은 가깝고 산천의 모습과 산업구조도 비슷하다"면서 "조선은 동북지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방법과 경험을 연구하기를 희망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그가 둘러본 창춘과 지린, 투먼은 중국이 동북지역 개발의 중심으로 설정한 '창지투 개발개방 선도구'다. 중국은 지난해 여기에 종합보세구와 경제협력구를 건설하고, 교통인프라 건설을 통한 대외통로의 확장과 접경국과의 협력기반을 구축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는 동해진출로인 북한의 나진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 위원장의 동북지역 방문과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 동북3성과 북한 두만강 일대의 연계 개발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은 이제 부차적 관계?
중국 지도부가 지적한 대로 경제난 타개를 위해 대외협력이 불가피하다면 흡수통일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남한보다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일 것이다. 중국도 동북지역의 발전뿐만 아니라 안보적 이유에서도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있기를 강력히 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북중 간의 경제협력과 밀착이 현실화하면 북한에 남북관계는 부차적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ㆍ개방을 본격화한다 해도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게 된다. 통일세를 거둬 아무리 많이 쌓아놓는다 해도 그 돈을 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한가하게 김 위원장의 방중을 긍정 평가나 하고 있을 만큼 여유 부릴 때가 결코 아닌 것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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