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갑을 맞은 이모(67)씨는 병원을 한번도 찾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6월 초 갑자기 오른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급히 도착한 응급실에서 이씨는 뇌졸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그 원인이 '뇌'가 아닌 '심장'에 있다는 것이다. 의아했던 이씨는 의사 설명을 듣고 나서 최근에 느꼈던 가슴 두근거림과 어지럼증이 위험신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방세동으로 생긴 혈전이 뇌졸중 일으켜
이씨의 병명은 심방세동에 의한 급성 뇌졸중이었다. 심방세동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증상이다. 심장이 펌프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파르르 떨기만 하는 상태다.
정상인의 심장은 분당 60~100회로 일정하게 뛴다. 심장이 이보다 늦거나 빠르게,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을 부정맥이라고 한다. 심방세동은 이 부정맥 중의 하나다. 심방의 여러 부위에서 맥이 만들어져 심방 전체가 균일하게 수축하지 않고 부분부분 무질서하고 가늘게 떨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맥박수도 분당 100~150회 정도로 빠르고 불규칙해진다.
심방세동은 갑상선기능항진증 등 일시적인 원인으로도 발생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들면서 늘어나는 만성 퇴행성 질환이다. 최근 고령인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심방세동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인 가운데 10% 정도가 심방세동인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증상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상태가 계속되면 심장에 피가 고여 혈전이 생기고, 이것이 몸 전체로 퍼져 뇌로 가는 혈관을 막아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최기준 서울아산병원 심방세동센터 소장은 "심방세동 환자가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정상인보다 4~5배가량 높다"고 말했다.
뇌졸중은 나이가 많고, 당뇨병과 고혈압·흡연·비만 등 동맥경화 유발인자를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병한다. 하지만 뇌졸중의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는 심방세동이다. 실제로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에서 심방세동이 처음 진단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최 소장은 "심방세동은 심장 내 전기 회로에 생긴 문제로 발생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 근육 자체에도 병이 유발될 수 있으므로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장의 전기 신호를 확인해 병 진단을
심방세동이 의심되면 심전도 등 기본 검사를 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얇고 긴 카테타(관)를 혈관에 집어넣어 심장에 접근하는 전기생리학검사로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심장의 전기 신호를 정확히 알아내 심장 안의 전기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치료법은 크게 약물치료와 수술로 나뉜다. 약물치료는 기본적으로 혈전 생성을 예방하는 치료에다가 불규칙한 맥박을 고르게 해주는 약물을 병행한다. 하지만 이런 약물치료만으로는 맥박을 정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50%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심방세동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물은 다른 약물보다 부작용이 많아 사용에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술은 가슴을 열고 심장에서 심방세동이 생기는 부위를 직접 찾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고 심장을 멈춘 상태에서 진행하는 만큼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심방세동만 치료하기 위한 심장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판막수술 등 다른 심장수술을 할 때 덧붙여 시행한다.
3차원 지도 이용한 도자절제술이 효과적
약물치료와 수술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 바로 3차원 지도를 이용한 도자절제술이다. 3차원 지도를 이용해 심장 안에서 심방세동이 생기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낸 다음, 다리 혈관으로 가느다란 관을 집어넣어 고주파로 지져 없애는 것이다.
김유호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도자절제술은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가슴을 열거나 심장을 멈추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시술 후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다면 보통 2~3일이면 퇴원해 곧바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 역시 "암이나 협심증을 치료하는 약물은 많이 발전했지만 심방세동 치료약 개발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기존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심방세동은 가슴을 여는 심장수술밖에 없었는데, 도자절제술이 도입돼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심방세동 환자가 모두 도자절제술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1차적으로는 약물치료에도 잘 호전되지 않는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심방세동이 너무 오래된 경우에는 시술 성공률이 떨어지므로 만성이 되기 전에 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차원 도자절제술이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시술이지만, 이 수술을 하려면 3차원 지도가 장착된 치료기계와 전문 의료진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아직 폭 넓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은 1년에 100건 이상 시술하고 있고, 발작성 심방세동의 수술 성공률이 80%를 넘을 정도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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