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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람 길, 화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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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람 길, 화물 길

입력
2010.09.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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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 실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방방곡곡의 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점이다. 미루나무나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로 버스가 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신작로(新作路)는 물론이고, 벌목을 위해 닦인 산골짜기의 임도(林道)까지 말끔히 포장돼 승용차로 가지 못할 곳이 드물어졌다. 멀쩡한 옛길을 옆에 두고도 새로 넓고 곧은 길을 내고, 조금만 돌아가는 고개에는 어김없이 터널을 뚫어 옛 고갯길을 관광도로로 바꾸었다. 길을 내고 넓히고 펴는 것처럼 내세우기 쉬운 자치단체장의 업적이 흔하지 않고, 지역 주민의 경제적 이해까지 얽혔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편하고 빨라진 길은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보다 해가 되는 예가 많다. 지방 종합병원이나 백화점을 비롯한 고급시장이 겪는 수요 부족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서울이 지방 소비자까지 끌어당기는 '빨대 효과'는 부가가치가 큰 고급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서울의 흡인력은 이미 대전을 넘어 대구에까지 미치고, 접근성이 뛰어난 서울의 종합병원과 백화점에는 지방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 환자의 서울 유입은 교통 편의를 기준으로 서울지역 종합병원의 선호도 순위가 크게 바뀌고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 유흥업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빨라도 세시간 반은 걸렸던 고향길이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 해당구간 개통 이후 빠르면 두 시간, 늦어도 두 시간 반으로 가까워졌다. 고향의 친구들이 일과를 마친 후 서울로 달려와 같이 한 잔 하고, 아침에 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지방 돈이 이렇게 서울로 흘러드는 반면 지방에 떨궈야 할 서울 돈은 줄고 있다. 강원 동해안 지역을 찾는 발길과 현지에서 쓰는 돈이 줄어든 것은 굽이굽이 돌던 고갯길이 터널로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잠시 바닷바람을 쐬고 고개를 넘어와 영서에서 자는 관광객이 많다.

■ 빨라진 길이 지방의 기대를 배반한 것은 어디까지나 길을 그리 만든 사람 탓이다. 길은 사람과 물건을 나른다. 화물 수송이 빨라져 물류 비용이 줄면 지방과 서울 모두에 좋은 효과만 미친다. 적어도 개발독재 시절까지 는 화물 수송에 무게중심이 놓였다. 그것이 경부고속철도 이후 사람 쪽으로 너무 기울었다. 2020년까지 전국을 한시간 반으로 묶겠다는 '고속철도망 구축전략'은 그 절정이다. 산업도로까지 승용차가 점령했어도 화물전용도로 하나 없는 실정이다. 나라를 온통 서울과 그 교외로 바꿀 게 아니라면 정말 급한 것은 화물 길이 아닐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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