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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4> 게이츠헤드-문화예술도시로 변신한 탄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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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4> 게이츠헤드-문화예술도시로 변신한 탄광촌

입력
2010.09.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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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타인강을 사이에 두고 뉴캐슬과 마주하고 있는 소도시 게이츠헤드. 런던에서 북쪽으로 차를 달려 게이츠헤드에 도착하면 맨 먼저 언덕 위의 거대한 철제조각상 하나가 두 팔을 벌린 채 사람들을 맞는다. 높이 20m, 가로 54m, 무게 208톤에 이르는 이 공공미술 작품은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만든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다. 폐광 위의 땅을 딛고 우뚝 서 있는 ‘북쪽의 천사’는 탄광촌 게이츠헤드의 암울한 과거, 그리고 문화도시를 향한 희망을 동시에 웅변한다.

‘천사’에서 시작된 게이츠헤드의 문화벨트

게이츠헤드의 인구는 20만명에 불과하지만, 이곳의 문화 인프라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타인강변을 따라 세계적 수준의 음악당인 세이지 게이츠헤드(The Sage Gateshead)와 최첨단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볼틱현대미술관(BALTIC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이 나란히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세이지 음악당은 땅콩 같기도 하고, 애벌레 같기도 한 독특한 모양새로 유명하다. 콘서트홀 등 세 개의 홀을 우산처럼 감싸고 있는 3,0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게이츠헤드시가 7,000만 파운드(약 1,300억원)를 투입해 2004년 건립한 이래 한 해 70만명의 방문객이 찾는 이곳에는 영국 명문 악단 노던 심포니아가 상주하고 있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공연부터 록밴드의 콘서트까지 연간 450회의 공연을 소화한다.

2년 먼저 문을 연 볼틱현대미술관은 1982년 문을 닫은 뒤 철거 비용이 없어 방치돼 있던 옛 제분소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글로벌 미술센터를 표방하는 이 미술관은 지난 8년간 49개국 예술가 306명의 작품을 선보이며 매년 40만명의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현재도 영국 작가 코넬리아 파커, 아르헨티나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 미국의 플럭서스 작가 존 케이지의 전시가 층을 나눠 열리고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뉴캐슬과 게이츠헤드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가 있어 자연스럽게 뉴캐슬 방문객들까지 끌어들인다. 2002년 생긴 이 다리는 타인강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과 각종 문화시설을 눈 높이에서 즐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배가 지나갈 때는 눈꺼풀을 올리듯 다리 상판을 접어 올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윙크하는 눈(winking eye)’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리가 천천히 접히는 순간,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관광 가이드 잔 윌리엄스는 “30년 전만 해도 타인강변은 빈 창고와 쓰레기로 가득한 우범지대였는데 이제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게이츠헤드는 197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의 광산 폐쇄 정책으로 지역 경제의 주축이던 석탄, 철강산업이 무너진 데 이어 기계 등 다른 분야에서도 아시아 신흥국에 밀리며 1980년대 들어 완전히 주저앉았다. 실업률이 무려 23%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 개최한 국제 가든 페스티벌이 성공을 거두면서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문화에서 살 길을 찾기로 결심한 게이츠헤드시는 변화를 알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80만 파운드(약 150억원)가 들어가는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5년의 준비 끝에 1998년 완성된 ‘북쪽의 천사’는 영국 최고의 공공미술품이라는 찬사를 받아 한 해 15만 명이 찾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고, 게이츠헤드의 야심찬 도전을 널리 알리는 데도 성공했다. 천사의 성공을 발판 삼은 게이츠헤드시는 미술관, 다리, 음악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복권기금 등으로 예산을 확보했다. 음악당의 경우 최고의 음향 수준을 갖춘 하이테크 건축물을 신축하는 방식을, 미술관은 층고가 높아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데 적합한 제분소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택했다.

건축보다 커뮤니티와의 소통이 우선

콘서트홀이나 현대미술관 같은 고급문화시설이 정작 지역 사람들의 삶에는 얼마나 닿아 있을까. 궁금증은 세이지 음악당을 가득 메운 아이들을 보는 순간 풀렸다.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을 향해 공연장 관계자는 “오늘은 ‘빅 싱(Big Sing)’ 행사가 열리는 날”이라며 웃었다. 세이지의 음악교사들이 지역의 각 학교를 찾아가 같은 노래를 파트별로 가르친 후, 6개월 후 3,000명이 모여 한꺼번에 합창을 하는 행사다. 지역 노인들이 노던 심포니아 음악감독의 지휘에 맞춰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프로그램도 있다. 마케팅 디렉터 루시 버드는 “세이지는 그저 고급 공연장이 아니라, 이 지역의 음악 교육을 총괄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면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25개의 연습실이 음악당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볼틱현대미술관 역시 6개층 가운데 한 개 층을 교육 프로그램용으로 쓰고 있고, 지역 주민의 참여로 이뤄지는 미술 작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안토리 곰??2세부터 85세에 이르는 지역 주민 284명의 몸을 캐스트해 만든 조각 ‘도메인 필드(Domain Field)’를 이곳에서 전시했고, 미국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은 밀레니엄 브리지와 세이지 음악당 앞의 공간을 가득 메운 자원자 1,700명의 집단 누드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문화시설들이 탄광촌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건립 이전부터 착실한 준비 단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지 음악당의 경우 건립 5년 전인 1999년 건립 기금을 확보하자마자 각 학교를 대상으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건설 과정에서도 지역 음악인과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볼틱현대미술관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세계적 작가 애니쉬 카푸어를 불러 공간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하게하는 등 3년간 다양한 프리오프닝 행사를 열어 제분소가 미술관으로 바뀌는 과정을 시민들이 생생히 지켜보도록 했다.

음악당 건립 당시 기금 조성 책임자였던 컨설턴트 브라이언 데브남은 “세이지 음악당이 그저 강 위에 둥실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깊은 곳까지 뿌리가 닿아있다”면서“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여러 이벤트와 음악 발전을 위한 커뮤니티 재생 프로그램이 선행됐다. 장기적 계획과 필요성에 따라 단계를 밟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이츠헤드의 사례는 언뜻 건축물 몇 개가 낳은 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게이츠헤드가 우리에게 정말로 일깨워주는 사실은 단지 허허벌판에 멋진 건물 몇 개 짓는다고 해서 저절로 도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는 것, 건축보다는 항상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게이츠헤드=글ㆍ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 캐스 힌들 NGI 관광개발국장

가진 것 없는 도시 게이츠헤드의 예술 투자는 인근 도시 뉴캐슬과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두 도시는 오랜 기간 타인강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2000년 두 도시의 홍보를 총괄하는 기구인 NGI(NewcastleGateshead Initiative)를 설립하면서 손을 잡았다.

NGI의 캐스 힌들 관광개발국장은 “뉴캐슬은 교통이나 숙박, 쇼핑 등 편의시설과 인지도 면에서 이점을 갖고 있고, 게이츠헤드는 새롭게 형성한 문화벨트로 주목을 끌고 있다”며 “2008년 유럽문화수도 선정을 앞두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동 마케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캐슬과 게이츠헤드는 리버풀에 밀려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구축한 협력체계를 지금도 이어나가고 있다.

게이츠헤드의 성공시대를 연 것은 뭐니뭐니해도 ‘북쪽의 천사’다. 하지만 1994년 공모를 통해 곰리의 기획안이 발표됐을 때 지역 사회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힌들 국장은 “병원이나 학교 등에 비해 지역민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불확실한 문화 투자를 두고 돈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시 당국이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며 4, 5년에 걸쳐 사람들을 설득해 합의를 얻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북쪽의 천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북동부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해 예술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다. 게이츠헤드는 지역의 요구를 파악한 뒤 20년 장기 계획의 출발점으로 ‘북쪽의 천사’를 내세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NGI의 고민은 예술 투자로 불러일으킨 세계적 관심을 어떻게 이어나가느냐 하는 것. 힌들 국장은 “뉴캐슬 스타디움이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만큼 문화와 스포츠를 결합한 이벤트들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이츠헤드를 부러워하는 도시들을 향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강조했다.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처음 결정할 때는 신중한 판단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결정한 후에는 일관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게이츠헤드의 성공비결입니다.”

게이츠헤드=김지원기자

■ 국내사례

서울에도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가 한강 노들섬에 조성하는 복합문화시설 한강예술섬,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짓기로 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대표적이다.

건축가 박승홍씨가 설계한 '춤'을 바탕으로 하는 한강예술섬은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서울시향이 상주하는 심포니홀, 다목적극장, 미술관, 전망카페 등을 갖추게 된다. 춤사위를 형상화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지붕이 5개의 독립적인 건물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형태다.

서울시는 한강예술섬 조성에 5,865억원의 예산을 투입, 올해 착공해 2014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5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을 밝히면서 시작된 한강예술섬 사업은 설계비 문제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과의 계약이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2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근대문화재로 지정돼있는 기무사 본관 건물을 리모델링한다. 기무사 본관 건물과 직각 형태의 신축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북촌과 경복궁 등 주위 환경과 공존하는 열린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2,9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간다. 하지만 기무사 터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종친부 건물 유구에 대한 발굴 및 복원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립 일정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크다.

무엇보다 한강예술섬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모두 국제적 문화 랜드마크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어떤 콘텐츠를 담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한강예술섬은 6명으로 구성된 운영준비단을 꾸리고 있지만 역부족이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어떤 성격의 미술관으로 만들지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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