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ㆍ중소기업 불공정거래 문제가 전면 부각돼 중소기업인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공정사회 구현의 첫 걸음이 바로 공정거래의 정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정거래는 혁신경제 구조정착, 사회 양극화 해소,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 등의 현안 문제 해결의 열쇠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사이에는 공정거래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데, 2ㆍ3차 협력업체로 가면 불공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은 현금이나 60일 이내의 어음으로 신속하게 대금을 지급하는데, 2,3차 협력업체까지 이러한 혜택이 흘러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기업 호민관실에서 조사한 불공정 거래의 심각성은 부당 단가 인하, 부당 거래조건, 기술 탈취, 대금지급 조건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당 단가 인하를 보면 협상력의 차이에 비례하여 1차 대ㆍ중소기업 간의 거래에서 가장 심각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경쟁업체간 원가계산서 비교, 원가를 확인하는 부당한 현장 실사 등 다양한 불공정 행위는 2,3차 협력업체가 아니라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의 거래에서 특히 심각하다.
부당 거래 조건은 더욱 심하다. 제조업에서 건설 유통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부당 거래는 설계에서부터 납품, 사후 서비스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 탈취는 누가 뭐라 해도 대ㆍ중소기업간의 문제다.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특허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하도급법 상 엄연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인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다. 사업 제안 후 아이디어 탈취 사례는 대기업의 대표적인 문제다.
반면 대금지급 조건은 대ㆍ중소기업간의 거래가 2,3차 협력업체간의 거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1차에서 2ㆍ3차로 가는 과정에서 배달 사고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그러나 대금지급 조건은 불공정거래 중요도가 가장 떨어진다. 대금지급 조건만을 침소봉대하여 대ㆍ중소기업간 문제를 협력업체간의 문제로 오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분명히 2,3차 협력업체들의 대금 지급 조건도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단계의 대금 지급보다는 대중소기업간 부당 단가인하, 부당 거래 조건, 기술 탈취가 부가가치 분배를 왜곡하는 불공정거래 문제의 몸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질 왜곡에 따른 피해는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 저하를 거쳐 궁극적으로 대기업으로 간다. 이번 기회는 대기업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편 중소기업인들은 약간의 상생으로 불공정거래가 덮어지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의 상생펀드, 1차 협력 업체의 확대 등이 부가가치의 정당한 선순환 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 보자. 상생펀드는 금융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운영은 전적으로 대기업의 권한이다. 1차 협력 업체의 확대는 부품 사급 확대로 이어져 부가가치 분배 구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진정한 공정거래는 원가 계산서 등 기업 비밀을 요구하지 않는 정당한 단가 협상, 투명한 거래조건으로 확립된다. 공정거래는 대중소기업간 거래부터 정상화하여 시차를 두고 2,3차 협력업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문제는 역시 대ㆍ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부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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