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아하는 TV 개그프로그램 녹화장을 자주 찾는 A(30)씨는 최근 2~3시간씩 줄을 설 필요가 없게 됐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대신 줄을 서주기 때문. 덕분에 A씨는 퇴근 후 여유롭게 저녁까지 먹고 녹화장으로 향한다.
A씨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녹화장을 찾지만 입장 대기시간이 오래 걸려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였다"며 "줄을 대신 서주는 서비스를 자주 활용한다"고 말했다. 줄 서준 대가로 A씨가 지불하는 돈은 2만원이다.
서울 강남 일대에 생활밀착형 심부름 대행업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음식배달, 구청 등 관공서 업무, 처방전 약 타오기 등 기본 생활업무와 관련한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대부분 1인가구나 맞벌이 부부가 이용한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 연예계 종사자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부름센터 ㈜애니맨 관계자는 "20~30대 여성 직장인이 많고, 특히 고객의 80%가 강남지역 거주자"라고 했다. 이 업체의 하루 평균 고객 이용건수는 약 200건.
주문내역을 살펴보면 주로 배달이 안 되는 커피전문점이나 고급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료나 음식을 갖다 달라는 것이 많다. 최근에는 구청업무대행, 법원동행서비스, 줄 서주기, 애완동물관리, 집안 내 가구 재배치 등 자잘한 일상생활 업무도 많아졌다.
이혼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법원을 갈 때 외롭다며 동행서비스를 요청하거나,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대신 건네달라는 황당한 심부름을 부탁하는 고객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문제는 이용요금 책정기준과 피해보상 규정 등이 명확하지 않아 자칫 소비자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 요금은 기본이 5,000~6,000원이고, 은행업무는 8,000원, 서점 및 백화점 구매대행 8,000원, 강아지 병원에 맡기기 1만원, 가구 재배치 시간당 3만원 등이다. 소액이긴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정했는지는 업체마다 설명이 다르다.
돈과 개인정보가 관련된 은행업무를 대행시키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을 이용할 수 없는 노인이나, 노출을 꺼리는 연예인, 낮에 잠을 자는 유흥업소 종업원, 해외파견업무가 많은 회사원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심부름센터 관계자는 "수표 교환 및 입금 등 꼭 은행을 찾아야 하는 일도 있다"며 "돈을 찾고 입금할 때 영수증을 꼭 챙겨주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로 신뢰를 쌓은 단골들은 믿고 맡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이 대개 영세하거나, 이 업종을 규제하는 법규도 따로 없어 피해발생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남구청 홍석균 소비자보호팀장은 "심부름센터는 세무서에 사업신고를 하면 누구나 영업할 수 있는 자유업에 해당돼 관련 법안이나 규정 등이 모호하다"며 "은행업무 등 돈 심부름을 의뢰할 때는 특히 소비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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