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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MB, 확실히 져야 이긴다

입력
2010.08.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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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ㆍ8 개각 파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 등의 사퇴로 수습 국면은 형성됐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파문의 1차 책임자는 물론 온갖 결함에도 고위 공직을 탐낸 당사자들이다. 인사 검증과 대통령 보좌에 실패한 청와대 참모들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근본적 책임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바뀌어야 할 대통령 인사철학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을 때 청와대 관계자는 "대부분 사전 검증에서 파악된 문제"라고 했다. 개각 때마다 도덕성 논란이 반복되는 본질적 이유를 분명하게 일러준 말이다. 그 중 핵심은 실용주의로 포장된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다. 청와대 관계자 언급을 해석하면, 이 대통령은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 된다. 이 대통령이 예의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인사 철학을 고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권 출범 후 수 차례 인사 파동을 겪었다. 그때마다 국민의 반감과 분노를 샀던 문제가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 전입, 이중 국적, 부동산 투기, 스폰서 논란 등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 문제는 별것 아니다'는 식의 인사 철학을 고수했다. 공직 후보자에게 능력보다 도덕성, 준법성과 같은 잣대를 우선 적용하는 국민의 시각과 크게 엇나간 것이다. 그때마다 민심이 차갑게 식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대통령이 이같은 인사 철학을 고집할 때 초래될 비판과 논란을 몰랐을 리 없다. 첫 조각 단계에서 자신이 내정한 인사가 임명장도 못 받고 낙마한 경험은 이 대통령으로서도 아픈 기억이다. 그럼에도 문제투성이 인사를 중용하려 한 까닭은 무엇일까. 논란과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개각을 통해 실현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 대통령은 8월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역대 대통령이 그러했듯 이 대통령도 레임덕을 의식했을 것이다. 공직 사회를 다잡으며 '친서민''공정한 사회'정책을 추진하려면 문제가 있어도 내각을 측근들로 채우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했을 법하다. 검찰 사정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한 시장 감시 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뀄다.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성을 얻기 힘들며, 위정자가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민심은 떠나버리고 만다는 것을 이 대통령은 간과하거나 경시했다. 7ㆍ28 재보선 결과와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믿었다면 오만한 승자, 횡포 부리는 강자를 용납하지 않는 민심의 속성과 흐름을 잘못 파악했다.

가정이지만 이 대통령이 후보자들의 자진 사퇴에 앞서 먼저 임명을 철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을 수 있다. 임명 철회를 통해 자신의 인사 철학과 용병술의 오류를 인정하고 민의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국정 장악력은 커졌을 것이다. 상당 기간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며 레임덕 우려도 불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대통령의 체면에 관한 문제인지 개인의 용기에 관한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후보자들의 사퇴 의사를 신속히 수용한 것은 평가 받을 만하다. 하지만 과연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 비판을 온전히 수용했는지는 의문이다. 직전 대통령과 천안함 유족을 모욕하고, 인권과 법절차는 무시한 채 실적만 좇아 온갖 부작용을 낳고, 억대 조의금 수수와 위장 전입 등 도덕적 하자까지 명백한 조현오 경찰청장의 임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탕평과 포용의 인사 보여주길

조 청장 임명 철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차기 총리를 포함한 다음 개각에서 이 대통령은 반드시 변화한 인사 철학으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특정 지연ㆍ학연, 대선 당시 공로 등과 무관한 탕평과 포용의 인사를 해야 한다.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구를 뛰어넘음으로써 국민과의 게임에서 확실히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염려하는 조기 권력 누수를 막는 길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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