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함축하는 자수성가 신화의 옹호자는 오랫동안 한국의 우파였다. 그러나 그 신화를 가능하게 했던 고교 평준화 같은 평등주의적 정책은 그들에 의해 폄하되고 있다. 그 제도의 뼈대는 한국 우파의 정신적ㆍ정치적 대부인 박정희 정권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2010년 한국에서 이 제도의 옹호자는 좌파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에 올랐으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한 인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파의 신념에 따른다면 칭송해마지 않을 자수성가의 전형이다. 그러나 우파는 그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내비친다. “대졸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따위의 말이 우파 국회의원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 도대체 한국사회에는 왜 이런 딜레마가 생겼을까.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원 성공회대 교수 등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학 등을 전공한 인문사회학자 15명이 쓴 (위즈덤하우스 발행)은 이 질문에 이런 식으로 답한다. “개인의 성취에 따라 경제적 소득과 사회적 지위, 정치적 권력을 보상해야 한다는 ‘업적주의’는 근대사회의 지배적 신념이다. 한국의 우파는 출발선에서의 평등,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업적주의를 강조하며 지배세력으로 성장했지만, 점차 기득권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결과적인 업적만을 중시하는 업적주의의 옹호자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은 업적주의 등 한국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핵심적 개념들을 둘러싼 좌우의 시각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개념은 모두 22가지. 국민주권과 대의제, 법치주의, 남북관계, 업적주의와 사회적 불평등, 범죄와 처벌, 애국, 영어공용화론과 영어몰입교육 등 인화성이 강한 주제들이다. 각각의 장은 개별 개념에 대한 ▦문제의식 ▦한국의 현실 ▦우파의 주장 ▦좌파의 주장 ▦대립의 본질과 전망 ▦사전적 정의 식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저자들 대부분이 진보 성향인 점을 고려, 각 장의 말미에 각 개념에 대한 좌와 우의 시각을 보여주는 관련 서적들을 소개해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갖도록 보완했다.
종종 반지성적인 소모전으로 귀결되는 한국사회의 이념 논쟁이 논쟁 주체들이 합의된 개념과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기인한다면, 이 책은 좌우파들이 벌이는 논쟁의 혼란상을 교통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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