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1일 야심적으로 내놓은 ‘8ㆍ31 쌀 대책’은 올해 생산될 물량 가운데 수요량을 초과하는 쌀을 사전에 시장에서 격리하고 50만톤의 재고쌀을 과감히 처분해 수급 균형을 맞춰 시장의 쌀값을 떠받치겠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수급조절 책으로 거론되던 ▦벼와 쌀의 사료용 전환 ▦대북 쌀 지원 ▦쌀 조기 관세화 등의 내용은 전부 빠져 ‘금년도 대책’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파격적인 대책
사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꽤 파격적이다. 시장 격리(정부가 사들여서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 물량의 규모나 처분되는 묵은쌀 물량 규모가 유례 없기 때문. 특히 지금까지 시장격리가 평년 수준 이상 생산분에 대해서만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수요량을 초과 생산분으로 확대 됐다. ‘쌀값은 정부가 책임지고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 시장 격리 물량과 수요량 사이에 12만톤의 갭이 있었는데 이 물량이 시장에 돌면서 쌀값을 떨어뜨렸다”며 “이번 조치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예상 격리 물량은 공공비축분(34만톤)을 제외하고 40만~50만톤. 작년 34만톤이 격리된 것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양이다.
너무 오래돼 밥쌀로 사용할 수 없는 묵은쌀의 처분 규모와 방법도 눈에 띈다. 올해 재고 149만톤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50만톤을 주정ㆍ가공용으로 공급하기로 한 것. 가격도 주정용의 경우 kg당 228원, 쌀가루 등 가공용은 335원으로 아주 저렴하게 책정됐다. 밀가루가 kg당 800원 수준인데, 쌀을 가루로 가공하는 데 드는 비용(500원)까지 감안한 대책이다. 이 값이면 쌀가루가 밀가루를 어느 정도는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미봉책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은 쌀 생산량은 늘고 있는데 반해 소비량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근본적 수급불균형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아무리 올해 초과물량을 전량 격리한다 해도, 내년이면 또 쌀이 남아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근본적인 대책들은 이번에 모두 빠졌다. 가장 현실성 있는 처분 방안으로 거론되던 사료용 공급은 국민 정서에 거스를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폐기됐고, 대북 지원도 정치사안으로 간주돼 아예 대책에서 빠졌다.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쌀 재고 처리 대책으로도 유효하며 인도적 입장과 남북관계 개선 측면에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고, 묵은 쌀의 사료용 전환에 대해서도 “국민 정서를 고려해 사료용으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결국 지금 대로라면 국민세금으로 쌀을 사들여 창고 속에 쌓아두는 일은 매년 반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기 관세화 설득용?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내놓은 파격적 조치들이 쌀 조기 관세화에 반대하는 농민 설득용이라는 평가도 내놓는다. 실제 이날 한 농민단체도 성명을 내고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일부 농민단체가 조기 관세화 조건으로 고정직불금 상향, 목표가격제 5년 연장 등 고강도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어 대화가 거의 중단된 상태”라며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정부가 해당 농민단체 설득에 다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유정복 장관도 “쌀 조기 관세화는 쌀값 안정과 농업 대책 등에 의미가 크다”며 “9월 말까지 협의돼야 내년부터 관세화가 가능한 만큼 9월에 농업 관련 단체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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