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2> 자녀와의 대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2> 자녀와의 대화

입력
2010.08.31 12:01
0 0

우리나라에서 자녀와의 대화가 원활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많은 통계와 연구자료를 종합한 결과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의 비율은 50% 수준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결과도 있다. 바로 자녀들의 생각이다. 부모와 대화가 잘 되는 편이라고 답한 자녀의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90%가 넘는 자녀 대다수가 부모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이런 엇박자 현상이 왜 발생한 것일까. 답은 명료하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대화’와 자녀들의 ‘대화’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여전히 자녀와의 대화에서 ‘설득 코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월한 부모가 열등한 자녀를 위해 훈계하고 타이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대다수는 대화를 시작하면 자녀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자신의 생각으로 자녀를 설득하기 위해 일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국 자녀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존중받지 못한다. 그리고 설득당해야 하는 불편한 처지에 빠진다.

자녀들이 상호간 ‘대화’가 아닌 일방적 ‘설득’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과 느낌은 강해진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해도 입을 떼지 않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 설득하려고만 하는 부모에 대한 반감만 커진다.

매사 의욕적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의 부모는 다르다. 그들은 상대와 공감한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은 구경도 못하고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너무도 안타까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한 쌍둥이 엄마의 사례가 그러하다.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똑똑해서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비결은 엄마의 공감능력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모로부터 공감이 아닌 설득을 강요 당하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비하한다. 때로는 저항감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없는 심리상태에 빠진다.

반대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소중하게 대하는 부모 덕에 쌍둥이들은 자존감을 키울 수 있었다. 설득 당하는 경우에 겪게 되는 자신감이나 의욕 상실과는 반대로 공감의 힘으로 자신감과 의욕을 키울 수 있었다.

성장과정에서 아무 문제없이 일관되게 모범생의 모습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구나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기고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이가 시험을 보던 중 '커닝'하다가 들켰다고 가정해보자. 자녀는 학교에서 이미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다. 집에 돌아온 아이를 다시 앉혀놓고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듣기 위해 설득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과천선할까.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만 강해질까.

자신을 궁지로 내모는 부모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결국 부모의 훈계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화되지 않을까.

반면 아이가 느끼는 수치심이나 당혹스러움, 죄스러운 마음을 공감한다면, 그래서 일단 아이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 아이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힘은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다. 진심어린 공감이다. 잘못을 타이르고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설득하려고 애써보지만 남는 것은 심리적 거부감이고 공부에 대한 의욕상실뿐이다.

반대로 잘못을 범한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알아서 움직인다. 실제로 부모를 대화 파트너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학업성취도는 대부분 우수하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다.

공부를 잘하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에 무리한 설득을 하다 보면 점점 공부를 못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진다. 그러나 학습부진으로 인해 아이가 겪게 되는 어려운 상황이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면 아이의 성적이 오르는 ‘기적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수많은 상담을 통해 거듭 확인했고, 대화빈도와 성적이 정비례 관계를 보인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의 연구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시험을 못 봤다고 야단치고 열심히 할 것을 강요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이미 많은 학부모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무관심과 방치는 문제지만, 부모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녀를 일방적으로 훈계하거나 설득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나친 공부 부담 때문에,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아이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해 주면 아이는 꽃처럼 피어 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진지하게 반응하자. 아이의 감정을 부모도 느끼기 위해 노력하자. 아이는 반드시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안겨주기 위해 스스로 움직일 것이다. 자녀를 설득하면 잃는 게 더 많지만 자녀를 공감하면 기대 이상의 것을 얻는다.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