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는 모든 것을 폭력적으로 규격화시키는 상품이다.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소설가 고 이상(李箱ㆍ1910~1937)의 삶을 그린 최근의 여러 영화에는 ‘멜로, 서정, 청소년 관람불가’ 등의 딱지가 붙어 있다. 성인물임을 천명하는 코드다.
극단 오늘의 ‘오감도’는 별다른 선정성 없이, 이상이 보였던 삶의 비일상성을 절도있게 해부한다. 숫자와 기하학적 선들로 둘러쳐진 간결한 무대는 이상과 그의 동거녀 금홍이 꾸려 나가던 이상한 일상을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오감도’ 등 이상이 남긴 텍스트들을 근거로 한 무대 속 현실이 21세기와 강력히 유착돼 있다는 점이다. 끈적끈적한 블루스 하모니커 등 음악적 도구뿐 아니라, 무대에 흡수된 현재의 풍경은 이 연극이 결국 지배적 구조에 편입되지 못한 인간들에게 바쳐져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좋은 예가 이 시대 명동 거리로 나온 이상의 행색이다. 금홍과 정사를 펼치려는 고객들의 출몰에 늘 뒷전 신세여야 했던 이상에게는 이 거리 또한 적대적이다.
붉은악마가 장악한 거리는 ‘핸드폰 공짜, 초특가 세일’의 현장이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재현되는 이 시대 명동 풍경은 이상이란 인간형을 현재적 실체로 현현시킨다. 최신 휴대폰 판매원에 붙잡혀 얼떨결에 계약서도 쓰고, ‘안아드립니다(Free Hug)’ 등 새 풍물에, 일본 여자 관광객들과 인솔자의 호들갑에, 넋이 반은 나가 있다. 긍정도 부정도 없는 이상에게서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 88만원 세대의 모습이 비친다.
이 연극의 또 다른 묘미는 4명의 코러스다. 이들은 경극처럼 새까만 옷 혹은 일상적인 의상을 걸치고 나와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자동차 소리에서 광고까지 일상의 소음을 입으로 내는가 하면, 집도의로 돌변해 이상의 가슴을 절개하는 시늉으로 이상의 내면을 보여주거나 냉정한 분석을 시도한다. 때로 의사로 변해 이상의 입에 아스피린, 수면제, 진통제를 한움큼씩 털어넣거나, 거리를 헤매는 이상에게 목이 터져라 “자네는 병신일세”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시선 한번 맞추는 법 없이 철저히 단절돼 있다. 당대와 철저히 단절된 ‘박제된 천재’의 자의식은 21세기와도 불화한다. 그것은 이상의 모더니스트적 고뇌를 속물화시키고 마는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연출자 위성신씨의 불편한 속내이기도 할 것이다. ‘금홍아. 금홍아’ ‘건축무한육각면체의 비밀’ 등 이상을 소재로 한 영화, ‘이상의 날개’ ‘상이’ 등 연극의 계보를 잇는 이 작품은 동시대와의 호흡 덕에 연극적 활력으로 가득차 있다. 26일까지 축제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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