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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구월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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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구월의 가르침

입력
2010.08.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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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다. 팔월의 달력을 쭉- 찢자 구월에 당도했다며 환하게 웃는 아우도 가을을 기다려왔던가. 지난 여름은 무더위로 혹독했다. 우리 기후는 이미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었다. 아우. 함께 물장구치며 놀던 하동(河童)이었던 여름 날씨는 이제 박물관에서조차 구경할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여름 내내 에어컨 밑을 떠나지 않는 조카들을 보며 측은했다. 조카들에게 더 이상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 아닌 것이 우리의 죄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우. 구월이 당도하면 가을이 따라 오는가. 구월의 칼이 팔월의 몸을, 잔서지절(殘暑之節)의 꼬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가을을 서정으로 펼쳐주는가.

여전히 덥다. 은현리 9월 1일의 낮 최고기온이 31도로 예고되어 있다. 아우. 구월 첫 날에 덥다고 투덜대지 말자. 은현리 들판에 함께 서보자. 벼들은 벌써 알이 차 고개를 숙이고 뜨거운 햇빛을 받던 머리 쪽에서부터 가을의 물이 들기 시작한다. 농부의 땀 이야기를 한다면 아우는 나를 또 계몽주의자라고 탓할 것이다.

오늘은 아우의 투정을 들어도 좋다. 사람에게 자연처럼 위대한 계몽은 없다. 그건 자연 속에서 사람이 가장 낮은 수준의 DNA를 가졌다는 뜻이다. 아우. 구월은 가을을 선물하지 않는다. 내게 구월은 사람을 가르치는 달이다. 여름에 노동의 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가을을 기다리지 말라고.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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