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드라마틱한 방중이 마무리되면서 내주 초에 개최될 노동당대표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명실상부한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출범을 알리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자회는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필요에 따라 소집하는 회의이다. 1958년 3월과 1966년 10월 두 차례만 소집됐으며, 각각 '종파세력 퇴출' '자주노선 공식화' 등 정치노선 변화와 관련한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44년 만에 열리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주요 직책을 맡는다면,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를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먹는 문제 해결해야 할 후계자
올 초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은 2012년 강성대국 대문 진입과 후계자 공식화를 연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계체제의 정당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인민경제 활성화, 핵문제, 대미관계 개선, 평화체제 수립 등 난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정권을 넘겨주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예정된 일정이 차질을 빚자 중국 방문을 통해 권력 승계를 최대한 압축해 진행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가 8월 27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한 환영연회에서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들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그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이번 방중에 김정은이 동행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이제부터 그는 큰 짐을 떠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후계자가 공식화되면 후계자의 유일관리제 및 후계자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당 사업, 중요 국가사업은 후계자가 지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인민생활을 가시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에서 후계자는 당 총비서나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고 수령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대하는 형식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후계자로서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인데,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따라서 이번 당대표자회에서는 중대한 경제노선의 변화가 점쳐진다. 인민생활 향상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간 협의한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될지가 관심사이다. 북한은 '자력갱생'에 기초한 인민경제 향상에서 국방공업에 기초한 첨단능력을 인민생활에 돌리겠다는 내용의 '첨단돌파'를 내놓은 바 있다. 주목할 대목은 실제 국방경제의 비중을 줄이고, 인민경제 부문을 얼마나 더 늘리느냐에 있다. 국방과 이념이라는 기존 주안점보다 경제발전에 더 역점을 두는 정책적 전환을 과연 이룰 것인지가 초점인 셈이다.
중국이 경제협력의 조건으로 직ㆍ간접적으로 내건 개혁ㆍ개방과 비핵화 수준을 얼마나 수용하느냐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개혁개방 30년 경험을 바탕으로 '자력갱생과 대외협력의 공존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빠른 발전을 이룩했고 어느 곳이든 생기가 넘친다"고 말한 대목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경제정책 노선 변화 보일 듯
물론 북한 체제의 경직성을 감안하면 당장 획기적인 개혁ㆍ개방정책을 선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경제정책노선의 변화ㆍ쇄신을 암시하는 제스처를 보여줄 가능성은 커 보인다. 김 위원장이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중국의 지원과 협력에 의존하여 달성하려 하는 경제발전과 후계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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