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1960년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하면서 공권력을 동원해 소유권을 강탈한 땅을 이제라도 옛 주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해당사자들이 많고, 이미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가 많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지난 22일 구로공단 땅 주인이던 김모(1999년 사망)씨 등 4명의 유족 3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고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국가가 반환해야 하는 땅을 현재 국가가 소유한 경우로 제한했다. 유족들은 현재 소유자가 국가가 아니라서 소유권을 바로 이전할 수 없는 땅에 대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현재 토지시가를 감정한 뒤 그에 상응하는 금전을 주민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국가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땅은 총 8,300여㎡. 서울특별시 토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땅의 공시지가는 수십 년간 폭등했다. 예를 들어 문제의 땅 중 단일면적이 가장 큰 구로구 구로동 1265번지(3,382㎡)의 경우 2000년 116만원이던 공시지가가 올해 330만원으로 10년 만에 세 배나 뛰었다. 구로동 731-5번지의 경우 90년에는 공시지가가 230만원이었으나 약 20년이 지난 올해는 590만원까지 상승했다. ㎡당 평균 땅값을 100만원이라고만 쳐도 이번 판결로 정부가 배상해야 할 금액은 80억원이 넘는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빼앗은 전체 땅은 68만㎡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에 언급된 땅 면적의 80배가 넘는다. 만일 당시 땅을 빼앗긴 당사자나 유족들이 잇따라 소송을 벌일 경우 정부가 물어야 할 배상액은 수천억원대로 늘어날 수 있다.
서울 구로동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김씨 등 주민 200여명은 1961년부터 국가가 구로공단 조성에 나서자 “농지개혁법에 따라 1950년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분배받은 땅”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 1968년 이후 대부분 승소했다. 그러자 당시 서울지방검찰청은 서류를 위조했다며 주민들을 집단 연행한 뒤 주민들에게 각각 권리 포기와 소 취하 동의를 강요해 받아냈다. 또 끝까지 땅을 포기하지 않는 주민들은 사기 혐의로, 농지분배 사실을 증언한 공무원들은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이와 관련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이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당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들은 지난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하기 위한 심문기일이 열렸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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