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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소' 두 번 죽인 상주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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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소' 두 번 죽인 상주市

입력
2010.08.3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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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소 한 마리가 사후 '의로운 소'로 추앙받아 박제됐으나 당초 예정된 박물관행 대신, 고깃집 로비에 1년여 동안 방치돼 시민들의 눈총을 사고 있다.

31일 경북 상주시에 따르면 시내 헌신동의 축협 소속 M 고깃집 2층 로비에는 폭 2㎙, 길이 5.5㎙ 유리관 안에 암소 한 마리가 박제돼 있다. 이 암소는 4세 때인 1992년 7월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임봉선 할머니 댁으로 팔려와 이웃에 살던 김보배 할머니와 정이 들었고, 93년 5월 김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묘소를 찾아 눈물을 보이며 애도했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사료 회사들은 앞다퉈 사료를 공짜로 대겠다고 나섰고, 수의사들도 평생 무료진료를 약속했다. 지역의 한 건설사 대표는 "암소가 편히 살다 죽을 때까지 팔지 말라"며 주인에게 소 값과 사육비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열아홉 되던 2007년 1월 11일 천수를 누린 끝에 숨지면서 이 소의 수난은 시작됐다. 다음 날인 12일 '의로운 소'로 추앙된 이 소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당시 이정백 시장과 지역 유지들은 암소의 빈소에 무릎을 꿇고 술잔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사체는 상주박물관 부지에 묻혔다.

하지만 시는 '의로운 소'를 널리 알려야 한다며 매장 20여일 만에 무덤을 파헤쳤다. 시는 부패하기 시작한 암소를 경기 지역 한 총포사에 맡겨 박제케 하고 암소의 죽음을 소재로 테마 사업을 벌이겠다며 7억원의 예산까지 짰다. 시민의 비난이 들끓자 시의회는 6억원을 삭감, 1억원만 승인하는 선에서 제동을 걸었다. 박제는 형편없었다. 목 배 사타구니로 연결되는 봉합 부위는 곧 터질 것 같고, 접착제가 흘러내리다 굳은 자국도 선명했다. 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박제 소를 지난해 6월에서야 1,620만원을 지불하고 찾아왔다.

박제 소는 결국 상주박물관 대신, 한우고기를 파는 식당 2층 구석 한 켠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여기다 1년여 동안 박제 소 관리자는 물론, 관리대장도 없이 방치되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 간부는 "박제할 때 성금도 모은 만큼 주민 동의를 얻어 묻어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말했다.

상주=글ㆍ사진 김용태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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