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소식을 전한 북한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이 중국 지도부와 '후계 구도' 문제를 논의한 정황이 포착된다. 후계 문제는 당초 김 위원장이 3개월 만에 돌연 중국 행을 선택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유력한 방중 목적으로 주목 받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27일 창춘(長春)시 난후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 연설을 통해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중(북중)친선의 바통을 후대들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조중 친선은 역사의 풍파와 시련을 이겨낸 친선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후 주석도 이에 "중조 친선을 시대와 더불어 전진시키고 대를 이어 전해가는 것은 쌍방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화답했다.
친선 관계와 지도부간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양국 고위급 인사들의 만남에서 덕담으로 건네는 오랜 관행이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의 5월 방중 때에도 '대대손손'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두 정상의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김 위원장의 방중 시점과 경로가 과거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내달 초 노동당 3차 대표자회라는 국가적 행사를 코 앞에 두고 있다. 44년 만에 열려 대대적인 당 조직 정비와 함께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이 가시화할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 위원장이 방중 결단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에 후계구도와 관련한 모종의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물론 후 주석의 발언을 권력 세습에 대한 지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도 이날 "김정은이 중국측 (초청) 명단에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실제 김정은이 동행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중국 당국의 설명대로 김정은이 실제로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이 있지만 적지 않은 외교소식통들은 김정은이 김 위원장을 동행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하면서 가족들을 데려갈 때 통상 공식 수행 명단에서는 제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의 동행 여부와 상관없이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행적을 보면 '권력 승계를 위한 정통성 확보'라는 명제가 또렷이 부각된다. 김 위원장은 방중 첫날인 26일 지린(吉林)시에 위치한 위원중학교와 항일유적지인 베이산공원을 방문한 데 이어 29, 30일에는 하얼빈의 항일 무장투쟁 유적지를 잇따라 찾았다. 모두 고 김일성 주석의 혁명 정신이 깃든 장소들이다. 동북3성 순방이 방중의 제1 목적은 아니더라도 선친의 혁명 전통을 계승, 권력 승계 및 위기 극복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서 6차례 방중에서 이번처럼 '성지 순례'를 연상케 하는 행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발자취를 더듬는 여정을 통해 '김정은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는 메시지를 중국 지도부에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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