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주관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입시학원들이 대학 수시모집에 맞춰 배포한 학교 학과 배치 참고표에 대해 전격 실태 조사에 나섰다. 학교생활기록부와 모의수학능력시험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학과를 규정해 놓은 배치표가 논술과 면접, 특기 실적 평가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는 수시모집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교협 관계자는 30일 “배치표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실태 조사를 벌인 뒤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교협은 수시모집의 대세로 자리잡은 입학사정관 전형은 시험 점수 이외에 학생들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 가능한 배치표를 만드는 것이 비상식적이라는 판단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일부 학원에서는 배치표를 기반으로 한 상담 컨설팅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원들은 “배치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입과 관련해 1차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라며 “이마저도 없다면 학생들은 입시와 관련해 막막한 상태가 된다”는 입장이다. 학원 관계자는 “배치표는 희망 대학이 있다면 비슷한 수준에서 지원할 수 있는 타 대학의 전형이 어떤 것이 있는지 참고하게 하는 수준으로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수시모집 전형이 복잡해지는 반면, 일선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입시 정보가 한정돼 있는 점도 배치표 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서울 소재 상위 몇 개 대학을 제외하면 일선 학교에서 진학 지도를 해 줄 수 있는 대학의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이런 점 때문에 학생들이 학원에서 배포하는 배치표를 참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학생들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도 변별력과 관련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배치표를 만들 게 되는 것이고, 배치표가 없다면 오히려 고액 상담 컨설팅이 성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교협이 배치표의 신뢰도를 문제 삼아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대책을 강제할 만한 근거가 마땅치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교육 업체의 A이사는 “배치표의 정보가 왜곡돼 있다면 그것을 제공한 업체는 자연스럽게 외면받게 될 텐데 실태 조사와 대응책을 논의하는 것은 주식 투자 실패의 책임을 애널리스트에게 묻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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