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기(43)씨는 1987년 입대 후 훈련병 시절 선임의 구타와 야간사격 소음 등으로 이명(耳鳴ㆍ귀 울림) 증상이 생겨 20년 넘게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깊이 잠이 들 때까지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질 못해 두세 번 되묻기 일쑤다. 수면 부족과 신경 과민으로 번듯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던 그는 가스배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씨는 대법원까지 가는 6년간의 소송 끝에 이달 중순 창원보훈지청으로부터 '공상(公傷ㆍ공무수행 중 상이)'인정을 받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는 "이명은 사실상 완치가 어려워 대부분 치료를 포기하고 병원에도 가지 않는데, 보훈청은 병원 진료기록을 제시해야 겨우 치료비만 지원한다"며 "변호사 비용 등 1,000여만원의 빚만 남았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여러 번 신청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군 복무 중 생긴 이명 및 난청 피해로 제대 후 고통 받는 전역자들의 국가유공자 신청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인정비율은 지극히 낮아 현실적인 지원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29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이명 및 난청 피해로 유공자 신청을 한 건수는 2004년 86건에서 2009년 779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누적 신청자(총 2,193명) 가운데 공상 인정은 789건(36.0%), 유공자 등급 판정은 381건(17.4%)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은 보훈처의 판정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 피해자들의 청력은 대체로 3,000~6,000헤르츠(Hz)의 높은 음역대에서 떨어지는데, 보훈처는 500, 1,000, 2,000Hz에서 각각 청력을 측정해 장애등급(1~7급) 판정을 한다는 것이다. 한씨는 "기준도 까다롭지만 군 생활로 이명이 생겼다는 사실을 본인이 증명해야 해 군 이명 피해자 중 7급을 인정받은 경우도 극소수"라고 했다.
군이명피해자연대(cafe.daum.net/promoteearplugs) 이광호(44) 대표는 "보훈처는 저음역대(500~2,000Hz) 판정기준을 적용, 피해자들을 고의로 배제하고 있다"며 "장애등급 판정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시 군 진료기록이 없다 해도 이명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과거 군 현실을 감안, 보훈처가 복무 중 이명 피해의 공상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훈처 관계자는 "억울한 심정은 이해되지만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상의등급구분심사위원회 판정에서 7급 이상이 나와야만 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당한 보훈수혜가 이뤄지도록 심사제도 개선 및 정책마련을 촉구할 것"이라며 "통원치료비 지원보다 보훈연금 지급 등 현실적 혜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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