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교실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누볐다. 사진으로 무슨 특별한 교육이 될까 싶지만, 가정환경이나 학업부담 등의 이유로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사진기를 쥐면 자신감이 샘솟는단다.
모든 세상을 다 렌즈 안에 담을 기세로 덤벼들 명분이 곳곳에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기 작동법부터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며 떠오르는 감정에 흠뻑 젖는 법까지. 사진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의 교실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진공부는 신나는 놀이
"우와, 친구 옆모습에 아주 초점을 잘 맞췄네. 님 좀 짱인듯."
25일 오전 경기 용인시 대한항공신갈연수원. 사진심리학자 신수진(42)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가 어린이들 틈에서 그네들의 말투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공익단체인 일우재단 기획으로 2박3일간 마련된 '모범 어린이 초청 사진교실'의 마지막 행사로 아이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신 교수는 사진교육이 어린이 인지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며 5년째 방학 때마다 지도학생들과 지역아동센터 등의 초등학생을 초청해 사진교실을 열었고, 올해는 일우재단 주최 사진교실에 외부 디렉터로 참여했다. 이름을 '모범'어린이 초청 사진교실로 한 것도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다. 사진기와 프린터기는 제작업체에서 임대 형식으로 지원했다.
참가자들은 서울 양천구 암미지역아동센터 소속으로 평소 각각 맞벌이 가정, 조손(祖孫) 가정 등 가정형편 탓에 학교가 끝나면 센터에 모여 공부도 하고 식사도 하는 초등학생 24명이었다.
사진교실은 놀이처럼 진행됐다.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하면 고속으로 움직이는 사물을 찍을 때 좋다 등의 기초이론은 '사진기 들고 얼음 땡(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기) 놀이'로 대신했다. 장난감 비행기는 카메라 앞에, 아이들은 멀리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아이가 비행기에 타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생기는데, 이 놀이를 통해 원근감을 배웠다. 처음에는 쭈뼛이 서있던 아이들도 이내 교실 곳곳을 누비며 친구와 힘을 합쳐 추락하는 비행기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 작은 나뭇잎 밑에 10여명이 비를 피하고 있는 듯한 모습 등 착시현상을 이용한 그럴싸한 사진작품을 만들어냈다.
렌즈에 스며있는 내 마음 보기
사진 교실의 더 큰 목적은 놀이보다는 사진감상으로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다. 예컨대 평소 칭찬을 적게 받아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친구가 찍은 사진에서 자신의 외모와 모습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교사의 칭찬을 받고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감을 키운다는 것. 자기도 모르게 성난 표정을 고수했던 아이는 사진을 보고 정작 자신은 몰랐던 표정을 반성하기도 한단다.
신 교수를 비롯한 자원교사들이 앨범을 완성중인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우와 짱인걸" "이야 잘생겼다" "어쩜 이렇게 예쁘게 웃니" 등 감탄사를 연발하자 아이들은 정작 자신들은 몰랐던 '멋진 내 모습'에 매료된 표정이었다. 사진을 오리고 붙이던 어깨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다. "선생님 하루 더 있다 내일 가면 안돼요"하는 응석도 쏟아졌다. 할머니, 큰아버지, 식당일로 새벽에나 들어오는 엄마와 3남매가 10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A(12)양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암미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부모가 밤낮으로 뛰어야 생계유지가 가능하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도 저마다 외로움과 분노를 마음 속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을 통해 우울한 감정은 털어내고 자신감은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진기가 없는 친구들도 있어서 짧은 사진교실 후에 비슷한 수업을 센터에서 이어갈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외국어 교육에서 소외되는 친구가 없도록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만큼, 영상시대의 필수품인 사진기 등의 소통도구로부터 소외 받는 일이 없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2박3일간 공들인 아이들의 사진 작품 중 우수작은 여행사진 공모전에 출품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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