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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상생 전문가 토론/ "불공정 행위 걸려도 경고에 그쳐…처벌 본보기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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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상생 전문가 토론/ "불공정 행위 걸려도 경고에 그쳐…처벌 본보기 보여야"

입력
2010.08.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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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지난달‘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기획 시리즈로 대ㆍ중소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집중 지적하며 사회적 이슈를 제기한 바 있는 본보가 이 분야 전문가 6명을 초청, 공정거래 및 상생방안 지상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에서 준비중인 공정거래 방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 제시 차원에서 26일 오후4시30분 본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는 참석자 간 격론이 벌어지며 당초 예정시간을 1시간30분이나 넘겨 밤7시에야 겨우 마무리가 됐다. 이날 토론의 주요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참석자: 이민화 기업호민관, 김상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협력국장, 안병화 대ㆍ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진법 포스코 상생협력실장, 박일근 한국일보 산업부 차장대우(사회)

박일근=최근 대ㆍ중소기업의 불공정 문제가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것이 중소기업들이 우려하는 현장 목소리다. 사실 대ㆍ중소기업의 불공정 문제가 불거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들도 이미 상당부분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공정 거래 관행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중소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해법과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이민화=우선 제도가 마련돼 있는 데도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는 것은 제도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서 중소기업들이 신고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실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보복이 두려워 신고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신고할 경우 유ㆍ무형의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한다. 물론 현행 하도급법도 이러한 대기업의 보복에 대해서 형사 처벌이 가능토록 돼 있지만 실제로 대기업이 이로 인해 처벌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김상준=하도급 업체가 불이익이 두려워서 쉽게 신고하지 못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다양한 방법의 신고 제도를 마련, 운영하고 있다. 특히 매년 5,000개의 원사업자와 9만5,000개의 수급 사업자를 대상으로 서면조사를 펴고 있다. 신고를 하고자 하는 중소기업들은 언제든지 공정위 상담실을 직접 찾아 신고를 할 수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할 수도 있다. 신고자 신분은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며,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중소기업인들은 신고를 하면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공정위는 일단 자료를 수집하면 불만을 제기한 기업이 어느 기업인지 대기업이 알 수 없게 직권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안심해도 된다.

김세종=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이 이런 제도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에는 공정위에 일부 책임이 있다. 공정위가 그 동안 하도급이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를 얼마나 취했는 지 의문이다. 올해도 건설 하도급 문제와 관련, 공정위가 나서 조사하고 조치도 취했지만 결국 서면경고나 구두경고가 대부분이지 않았느냐.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하다 보니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중소기업들도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공정위의 (대기업에 대한) 재제 조치가 좀 더 원칙에 따라 강하게 적용되길 기대한다. 중소기업들이 용기를 내 신고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뭔가 달라지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야만 한다.

김상준=공정위 조치 중 경고가 많은 것은 맞다. 서면실태조사를 하면 몇 천, 몇 백 개의 위반 사업자가 나오는데 이들에게 모두 강한 처벌을 내릴 순 없다. 이 때문에 처벌보다는 일정 기간 자진 시정 기회를 주고 있다. 수급사업자가 정상적인 보상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면 경고를 주고 끝낸다. 80% 이상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신고나 직권 인지를 해서 발견된 문제들은 별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하도급법 위반 행위 등을 적발,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과징금도 엄격하게 처리한다. 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적도 있다. 수급 사업자가 명확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면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다. 공정위는 근거만 확실하면 강력한 제재를 할 자세가 돼 있다.

김세종=공정위가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문제는 사후 조치에 대해 발표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료를 뒤져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공정위가 미적미적하지 않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민화=현장의 의견은 몇가지 보복 사례에 대해 실질적 처벌만 해 줘도 그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것이다. 하도급 사업자가 보복을 당했을 경우 그 사례를 직접 입증토록 하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에게 입증 자료를 제시하라고 하는 것은 불공정 행위 신고를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김상준=수급사업자가 보복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진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정위가 수급사업자를 대신해서 입증책임을 진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심판정에서도 수급사업자가 아닌 공정위와 원사업자가 쌍방으로 나선다. 수급사업자는 공정위에게 사실 관계만 알려주면 되고 실질적인 업무처리는 공정위가 나서서 한다는 것이 맞다. 신고자가 보복을 당했다고 하면 공정위가 나서 그에 대한 증거를 찾고 법리적인 검토를 통해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민화=공정위는 대리인 역할을 할 뿐이고, 입증 책임은 궁극적으로 신고인인 하도급 기업에 있다. 그리고 보복의 대표적 사례가 주문 물량을 줄이고 거래를 중단하는 것인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게 보복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기업은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김상준=그런 경우에 공정위는 수급사업자에게 거래 중단 이유를 묻고 이를 자세히 조사해서 원사업자에게 관련 진술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불공정거래 행위를 입증할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불공정 거래 문제가 흔히 대기업과 이들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통계를 보면 대기업과 1차 사업자간 거래는 비교적 공정한 편이다. 반면 1차 사업자에서 2, 3차 사업자로 내려가면 공정하지 못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어떤 장관이 이를 ‘배달사고’라고 말했는데, 결국 아래로 전달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민화=그렇지 않다. 최근 중소기업 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대ㆍ중소 기업 문제가 단순히 2, 3차 기업으로 성과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으로만 왜곡되며 다른 문제들이 희석되고 있다는 데 있다. 대금지급 문제만 본다면 어느 정도 좋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ㆍ중소기업 불공정 거래 문제의 핵심은 대ㆍ중소 기업간 부당 단가인하 요구와 지식재산권 및 특허 부당 공유 요구 문제 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2, 3차 협력업체 대금결제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를 호도할 우려가 있다.

안병화=열기가 너무 뜨거워진 것 같다. 대ㆍ중소기업협력재단의 사례를 얘기해 보겠다. 재단에선 수ㆍ위탁 거래 관계에서 여러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 수ㆍ위탁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해결책은 찾는다. 이를 위해 애로신고 센터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도 신고가 들어오면 내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분쟁조정위원회 등을 거쳐 문제를 해결한다. 대개의 경우 위탁 기업이 수긍하고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상생한다는 의미에서 너무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잘 해결되는 경우들도 많다.

김기찬=대ㆍ중소기업 상생 논의가 자칫 노사 문제처럼 투쟁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궁극적으로 상호 계약을 넘어서는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계약 준수는 당연한 것이고, 법 자체 논의 이상의 것이 나와줘야 한다. 그래서 조합에게 협상 권한을 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조합이란 제3자에게 권한을 넘겨줘 힘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보면 제3자의 개입이 낮아지는 추세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중소기업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일근=좀 더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자. 중소기업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가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친다는 것이다. 원자재가격이 올랐는데 납품 단가에는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낮아진다는 게 현장 하소연이었다. 또 대기업들이 업무협조라는 명목으로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 사실상 실사를 벌이고 이를 근거로 이익률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역시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단가를 더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법은 없는가.

이진법=대ㆍ중소 기업의 상생 협력 문제는 결국 최고경영자(CEO)나 총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체 산업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과제다. 특히 운영의 묘가 발휘돼야 한다. 원자재가가 올랐을 때 납품단가를 100%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중소기업도 자체 개선 활동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납품단가가 오른 만큼 단가를 올려달라고 하기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개선 노력을 먼저 펴야 한다.

김세종=중소기업이 납품단가 문제로 떼를 쓰자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이 ‘이 정도면 믿고 투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여유를 달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적정한 분담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가 그 동안 부족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고동락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동안 중소기업들은 동고만 있고 동락은 없었다고 느끼고 있다.

김상준=공정위는 현재 그 부분에 대해서 투트랙(2 Track)으로 운영을 해 나가고 있다. 첫째가 감시와 제재인데, 부당단가 인하에 대해서 적발해서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기업들은 매년 단가인하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에게 일률적으로 몇% 낮추라고 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럴 경우 적발해서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둘째 상생협약을 독려하고 있다. 일종의 ‘소프트 로(Law)’로,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아니고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상생 협약을 맺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후 이런 것들을 감시해 이런 부분이 이행됐는 지를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잘된 경우에는 1년 뒤에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안병화=얼마전 재단 이사장인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업체 관계자들도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1년에 단가 조정을 무려 네 번씩 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채산성이 없으니 실질적인 설비투자 등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들은 중소기업이 먹고 살 만큼이라도 납품단가를 올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문제는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때문인데, 그 동안 이어져 온 관행이나 문화, 구조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기업의 CEO나 오너들이 진정성을 갖고 한다면 해결될 문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실질적인 상생 문화가 만들어져야 외국처럼 법으로 규제하지 않아도 동반성장할 수 있다.

김기찬=우리나라는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가격입찰로만 하기 때문에 납품단가 인하를 스스로 하게 된다. 가격입찰 외에도 능력입찰 등의 방법이 있는데, 이는 불공정 거래로 간주해버린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가격 입찰은 전체의 8~9%에 불과 하다. 나머지는 모두 소수 지명발주와 같은 능력입찰로 선정된 업체에 맡기고 있다. 가격보다는 능력을 가진 업체가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김상준=적격심사제도를 말하는 건데, 우리나라에선 심사를 통해 ‘당신은 부적격이니까 입찰 못한다’고 하면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 바로 가격입찰제다. 다만 이 때 공정위가 주목하는 부분은 가격입찰제도를 악용해 저가입찰을 미리 알려준다거나 한 입찰자에게 다른 입찰자의 가격 인하 요인을 알려주고 더 깎아서 낙찰 시켜주는 행위들이다.

김기찬=적격자를 심사하는 공정성 문제를 내세워 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입찰 기업의 과거 기록을 근거로 적격 심사 탈락 근거를 만들고 있다. 기록이 있는 기업과 신규 심사 참가 기업을 나눠 섞는 방법 등도 고려될 수 있다. 또 가격입찰제로 해야 하는 기업과 적격 심사를 거쳐서 입찰하는 기업들을 구분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이 가격만으로 업체를 선정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 기업이 꾸준히 지원을 받아 3차 협력업체에서 2차, 1차 협력업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찰 계약을 꼭 1년으로 제한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는 계약 기간이 너무 짧다. 2,3년 여유를 주고 설비투자 등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자칫 6년짜리 인삼을 키우지 못하고 1년짜리 무만 키울 수 있다.

김세종=일본의 통계 자료를 보면 일본의 대기업들은 하도급 업체에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물량을 늘려주며 지원한다. 도요타의 경우에는 수년간 축적된 자료를 통해서 품질 등에 관해 지속적인 피드백을 해준다. 반면 현대차는 가격을 낮추거나 기술공유를 전제조건으로 내 세우고 있다. 이처럼 아무리 제도를 좋게 만든다고 해도, 그 동안 이어온 낙후된 관행을 먼저 바꾸지 않으면 제대로 뿌리내릴 수가 없다.

박일근=지적재산권침해 문제도 짚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도급 계약을 맺을 때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기술을 넘겨 줘야만 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 인력을 대기업으로 빼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민화=대기업 중에는 중소기업과의 거래 조건으로 특허 기술을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고 못 박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임에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허 공유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대기업이 특허 공유를 요청할 때 먼저 정부 기관에 이를 신고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신고제를 통해 지적 재산권 보호에 대한 부분적인 보완을 해 주자는 것이다. 또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사업을 제안하기 위해 사업 계획 등을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아이디어 등을 빼앗기는 경우들도 많다. 중소기업이 비밀유지약정을 먼저 맺자고 제안을 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대기업에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까 봐 감히 그런 얘기는 꺼낼 생각도 못한다.

안병화=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어려운 점을 빌미로 기술자료를 달라고 해놓고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인? 그렇게 확보한 자료를 다른 기업에 넘겨 생산하게 하는 등도 발생하고 있다. 이후 거래 중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기술자료 임치제도다. 이는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보호하는 제도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약 400여건의 기술자료가 임치됐고, 올해도 500건의 자료가 임치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임치 금고를 3,000개로 확장하는 작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처럼 영업비밀이나 소스코드, 사업계획서 등을 상생협력재단 등에 임치를 해두면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아예 구매계약 할 때 기술 임치를 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대기업에도 이득이 된다. 만약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부도 등으로 사라졌을 때 임치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박일근=거래 프로세스 문제로 넘어가, 중소기업에선 구두발주와 구두취소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외국의 글로벌 기업 중엔 6개월 전에 발주를 하고 1주일단위로 주문량과 가격 등을 갱신하며 업데이트해주는 곳도 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대기업이 해외에선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거래를 하면서도 유독 국내에선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준=기업협력국장으로 부임하며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이 바로 서면계약문화 정착이다. 모든 다툼이 서면 계약서가 없는 데서 생겨난다. 불공정 거래 피해를 당한 기업은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하지만 계약서가 없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경우 공정위도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어떤 내용으로 계약을 했는지 알아야 처벌을 하려도 할 수 있는데 계약서가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조사를 해 보면 제조업체의 47%가 계약서가 없이 거래를 하고 있다. 전체업종으로 확대하면 29%가 계약서 없이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다. 제발 계약서를 작성해 주길 바란다. 또 최근 하도급계약 추정 제도를 도입했다. 구두 계약을 했더라도 우편 등으로 서면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맞다, 틀리다 답변이 없더라도 15일간 무응답을 유지하면 계약 추정 제도를 통해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 제도는 민법의 원리를 뛰어넘는 급진적인 제도이나, 하도급계약 특성을 십분 고려해 도입하게 됐다.

이민화=하도급계약추정제도는 정말 잘 된 것이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중소기업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진법=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은 수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직원 중 한명이 구두 발주를 했다 취소해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대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부규칙이 필요할 듯 하다.

김세종=구두발주와 함께 중소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이 단품계약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결국 10개를 주문할거면서 매일 한개씩만 요청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글로벌스탠더드 요구는 이런 부분에서도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원하는 물건을 납품 받았으면 제 때 돈을 지급하라, 거래를 중단하고 싶으면 미리 알려줘라,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지켜달라 등이 중소기업들이 외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이민화=이런 차원에서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해야 한다. 구두주문했다 취소한 경우, 손해액의 3배를 갚도록 하는 것이다. 징벌적 배상제의 근거는 확률적 기대값인데 하도급법을 위반할 때 걸릴 확률만큼 곱해서 배상토록 하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고 미국에선 이 제도 도입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컸다.

김상준=징벌적 배상제는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선 도입이 어렵다고 본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손해액 이상으로 배상을 하라는 것인데, 이미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많은 논의가 오고 간 내용이다. 도입이 어렵다고 결론이 난 사항이다. 소송 남발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김세종=남소 문제도 있겠지만 몇 가지 요건을 정하면 도입도 가능 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의 하도급 관행이나 중소기업 피해 문제를 보면 중장기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박일근=마지막으로 못다한 말씀이 있다면.

김세종=중소기업이 원하는 것은 대기업의 성과를 나눠 가져 하향 평준화 하자는 게 아니다. 대기업도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단가를 낮춰야 한다는 것은 중소기업도 잘 알고 있다. 다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거래하고 예측 가능한 주문 등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김기찬=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경제로 변화된 측면이 있는데, 앞으로 이런 논의를 자꾸 이어가 기업 생태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주주도 중요하지만 부품업체들도 중요하다.

김상준=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거래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 기업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모든 것을 투명하고 지속가능하게 운영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기업가들은 먼저 법과 제도를 투명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안병화=기업 스스로 공정거래 의지를 가져야 한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기술력을 확보하고 대기업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해외에 나가 경쟁하고 해야 대기업과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기업들 스스로 상생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면서 잘 해나가려는 문화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민화=문화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지금처럼 수직적인 갑을 관계로는 한계가 있다. 협력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바로 불공정거래다. 요즘처럼 대ㆍ중소기업의 상생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중소기업인들을 더 이상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문제는 공정거래지 상생이 아니다. 상생은 충분조건이고 공정거래는 필요조건이다. 상생이란 이름으로 불공정 거래 문제를 덮어선 안 된다. 또 단순히 대금지급 문제만 두고 전체 문제를 희석시켜서도 안 된다.

이진법=대기업과 1,2,3차 업체들을 아우르는 협력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대ㆍ중소 기업이 파이를 나누는 활동이 아니라 파이를 키워서 시너지를 내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민화 기업호민관

◇김상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협력국장

◇안병화 대ㆍ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진법 포스코 상생협력실장

정리=강희경기자 kstar@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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