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 1500∼1820년까지 경제규모(GDP) 기준으로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던 중국(주경철의 서울대학교 출판부)이 세계경제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하고 있음을 말이다.
사실 1990년대 이후 GDP 규모에서 세계 주요국들을 차례로 제친 중국이 올해 세계 2위 자리에 등극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40년 넘게 세계 경제규모 2위 자리를 지켜 왔던 일본 스스로 중국에 추월 당했다고 자인한 것은 ‘G2(미국ㆍ중국의 2강을 일컫는 말)’나 ‘차이메리카(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라는 표현이 명실상부한 현실로 다가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일본의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조2,880억달러로 같은 기간 중국의 1조3,39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G2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외형적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가 되었다는 어찌 보면 감개무량하다고 할 수 있는 소식에 대해, 정작 중국 현지의 분위기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환호작약하기보다는 관련 소식을 간단히 전하면서 중국의 1인당 GDP 수준이나 삶의 질, 기타 각종 산적한 문제들을 지적하는 등 자세를 한껏 낮추는 모습이다. “중국은 국제연합(UN)이 정한 1인당 하루 최저 소득 기준인 1달러에 못 미치는 인구가 1억5,000만명에 달하는 낙후된 국가”임을 강조한 지난 18일 야오지엔(姚坚)상무부 대변인의 언급이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25일자 인민일보 등 대부분 언론들도 일관된 논조로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앞섰지만 성장의 질이나 복지 등에서는 미국은 물론이려니와 일본에도 아직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미국과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1인당 GDP 수준이 이러한 실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 규모의 비약적 발전 또한 중국 특유의 인해전술로 달성된 측면이 강하며, ▦중복투자 등으로 인한 일부 과잉설비산업 ▦매우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 공실률 등 경제 규모 확대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지난 5월부터 중국 인터넷에는 전국적으로 6,540만채의 빈 주택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와 같은 중국의 태도는 빈부격차, 자원부족 및 환경오염, 경제구조의 취약성 등 중국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서구 선진국의 ‘중국 때리기(bashing)’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G2라는 표현 자체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이며 이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 위협론’이나 ‘중국 책임론’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된다”고 보고 있다. 커진 덩치에 걸맞은 국제사회에의 책임 부담을 요구하는 서구 선진국과, 아직은 그럴 실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중국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중국은 명분과 실질의 조화를 추구하는 국가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G2라는 허울 아래 책임과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느니, 내실을 다져나가면서 실력을 기르는 전략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전략은 여전히 유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모습은 때로는 중국인보다도 더 ‘미엔즈(面子: 체면)’를 중시하여 각 부문에서 세계 몇 위라는 외형적 지표 달성에 매달리곤 하는 우리들이 한 번 곱씹어 볼 부분이다.
한재현 한국은행 북경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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