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지음ㆍ이순희 옮김
비아북 발행ㆍ246쪽ㆍ1만3,500원
“전쟁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사실은 경제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대부분이 화합보다는 충돌을 지향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에서 전쟁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난 후 영국 국민 사이에 전쟁열이 퍼져나가고 전쟁이 격화할수록 점점 호전적으로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현상의 근원을 성찰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1915년 런던의 캑스턴 홀에서 ‘사회 재건의 원칙’이란 제목으로 8차례의 강연을 했으며, 그 내용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원인을 국가간 외교분쟁이나 정치지도자의 공명심에서 찾지만, 러셀은 1차 대전을 관찰한 결과 전쟁도 평범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충동과 욕구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되며, 특정 행동을 지향하는 충동이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욕구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사회적, 지적, 정서적 행동은 파괴 혹은 소유의 충동이나 건설 혹은 창조의 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러셀의 이 같은 견해는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동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파괴 혹은 소유의 충동은 전쟁의 원천이지만 건설 혹은 창조의 충동은 과학, 예술, 사랑의 원천이다. 그래서 충동이 죽음과 퇴보를 향하지 않고, 생명과 성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러셀은 역설한다.
러셀은 소유의 충동에서 비롯된 국가, 전쟁, 사유재산을 창조적인 충동을 방해하는 행복의 적으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는 치안과 폭력예방 등 긍정적 개입 외에 국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전쟁에 대한 충동을 막기 위해 세계연방을 구성하며,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배금주의를 끊기 위해 협동조합 같은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교육제도, 결혼제도, 종교 등의 분야에서도 창조적 충동이 발휘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러셀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했다. 1916년 징병을 반대해 케임브리지대 강의권을 박탈당했으며,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써 6개월 구금형을 받기도 했다. 1954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자 아인슈타인과 함께 성명을 발표하고 핵무기 반대운동을 펼쳤다. 이 책은 20세기 수학, 철학, 과학, 역사, 정치학 등 인류 지성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준 러셀이 정치철학에 남긴 가장 큰 공헌으로 평가되는 저작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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