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는 세계적인 재앙이었지만 한 남자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주택시장 붕괴에 베팅해 200억 달러(약 23조원)의 투자 수익을 내며 ‘헤지펀드의 전설’로 등극한 존 폴슨(54)의 얘기다.
그 해 그가 운용보수로 받은 돈은 월가 사상 최고액인 36억 달러(약 4조원). 매일 110억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29억 달러)도 제쳤다. 이름 없는 펀드 매니저였던 폴슨은 한 방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고, 현재 세계 45번째 부자(2010년 포브스 집계ㆍ120억 달러) 반열에 올랐다.
거품을 찾는 안목과 배짱
2005년 폴슨의 눈에 시장은 거품투성이로 보였다. 그는 특히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는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물론 당시는 미국 주택시장이 대호황을 누리던 때였기에 사람들은 폴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전문가들도 그의 주택시장 붕괴 우려를 반박했다.
하지만 폴슨은 주택 거품이 꺼지면 돈을 벌 수 있는 신용부도스와프(CDS)를 2006년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CDS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보험. 부도 가능성이 있는 채권에 대한 CDS를 싸게 샀다가,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식이다.
폴슨은 부동산 호황기, 즉 서브프라임모기지에 대한 CDS가 쌀 때 CDS를 대량으로 사 놓았다가 주택시장이 폭락해 모기지에 대한 CDS 가격이 폭등하자 이를 처분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서브프라임모기지 90여개를 묶어서 재구성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에 대한 CDS 투자로도 10억 달러 넘게 벌었다. CDO에 대한 CDS는 이전에 없던 상품이었으나 주택시장 붕괴를 확신한 폴슨이 2006년 골드만삭스에 요청해서 만든 신종 파생상품이다.
2008년 폴슨은 ‘격’이 다른 펀드 매니저가 돼 있었다. 조지 소로스가 그를 불러 점심을 먹으며 투자법에 대해 묻는가 하면,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자신의 회사 폴슨앤컴퍼니의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의 한 마디에 전 세계 언론이 촉각을 세운 건 물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말 폴슨의 성공이 투자자들에게 주는 교훈 8가지를 소개했는데, 첫 번째가 ‘전문가에게 의존하지 말 것’이다. 폴슨은 고객들에게 “나는 무디스 등 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주식을 분석한다”며 “등급이나 소문만을 믿고 하는 투자는 뜨거운 맛을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문은 그 밖에도 위기에 대비한 현금 확보, 새 투자 상품에 대한 공부, 보험 등 안전망 확보, 한 가지에 ‘올인’하지 말 것 등을 꼽았다.
그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5월 미국 금융 주간지 배런스(Barron's)가 선정한 100대 헤지펀드에서 그는 최고의 매니저로 꼽혔고, 수익률에서도 그가 운용하고 있는 ‘폴슨 크레디트 어퍼츄니티즈 펀드’가 3년간 연평균 수익률 122.92%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성공의 비결?
집안 내력으로만 보자면 그는 타고난 투자자다. 외할아버지는 월가의 은행원이었고, 아버지는 대형 PR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그는 여섯살 때 할아버지가 사준 봉지 사탕을 친구들에게 낱개로 팔아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여섯 살때 껌과 콜라를 팔아 돈을 모았던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그는 뉴욕대 경영ㆍ공공행정학과와 하버드 경영대학원(MBA)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기도 하다.
폴슨은 첫 직장인 보스턴 컨설팅에서 부동산 컨설팅업무를 하며 시장 매커니즘을 파악했고, 월가의 투자 고수 레온 레비가 창업한 투자회사 오디세이 파트너즈에서 일하며 투자 노하우를 배웠다. 그 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인수ㆍ합병(M&A) 경험을 쌓았다.
1994년 폴슨앤컴퍼니를 창업했을 때, 그가 가진 건 종잣돈 200만 달러와 직원 1명이 전부. 이 회사는 현재 운용규모 340억 달러의 세계 3대 헤지펀드 회사가 됐다.
그러나 이 극적인 성공 뒤엔 찜찜한 의혹도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4월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제소했는데, 이 사건의 핵심에 폴슨이 있다. SEC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가 90여개의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묶어서 CDO를 만들 때 폴슨이 60개의 모기지를 추천해주는 등 상품 설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CDO가 떨어지는 만큼 돈을 버는 폴슨은 당연히 위험도가 높은 모기지를 넣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또 골드만삭스는 이 CDO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믿고 CDO를 산 유럽 은행들에 폴슨앤컴퍼니가 CDO 가격 하락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폴슨은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고, 이 소송은 지난달 골드만삭스가 SEC에 벌금 5억5,000만달러(약 6,600억원)를 내기로 하면서 합의를 보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가 과연 ‘존경 받는’ 헤지펀드의 전설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다음주에는 인도 최고의 재벌인 암바니형제를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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