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입력
2010.08.27 12:07
0 0

김기협 지음

돌베개 발행ㆍ304쪽ㆍ1만5,000원

매천 황현(1855~1910)의 한말 야사인 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군부대신 조희연을 물러나게 하려는 고종의 뜻에 대신들이 반대하자 고종이 화를 참지 못한다. “대신 하나도 물리치지 못한다면 어찌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옥새를 집어던지며 소리질렀다. “짐은 임금이 아니니 경들이 이것을 가져가라.” 대신들이 벌벌 떨었으나 이때 어윤중이 일어나 입바른 소리를 했다. “성인이 말하길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써 섬긴다’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신들을 이렇게 대하시니, 장차 신들은 어떻게 폐하를 섬기겠습니까. 바라건대 노여움을 푸시고 굽어 살피시어 공의를 펴소서.”

민족주의 사학의 비판자인 역사학자 김기협(60ㆍ전 계명대 교수)은 역사에세이 에서 조선 망국의 과정을 복기한다. ‘망해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에 집중됐던 역사 연구에서 한 걸음 떨어져 그는 ‘왜 망했는가?’라는 물음과 맞선다. 일본의 침략적 야욕을 망국의 절대적 원인으로 보는 외인론(外因論)을 극복하는 것을 그는 과제로 삼았다.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저자가 지목하는 것은 유교정치 원리의 쇠퇴다. 그에 따르면 유교정치 원리의 쇠퇴는 ‘권력 사유화’로 표출됐고 그 정점은 대한제국 시기였다. ‘충’과 ‘예’의 줄다리기로 표현되는 군신 간의 견제는 사회 전체에 도덕적 긴장을 불어넣었던 조선의 정치 원리. 그러나 임금이 옥새를 집어던지고 직언을 하는 어윤중 같은 이가 오히려 예외적 신하로 주목받는 고종 대는 이런 원리가 땅에 떨어진 시기라는 것.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최근 일부 사학자들에 의해 복권되고 있는 고종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고종에 대해 진상품에 의해 신하를 평가하고 위기의 순간에도 수시로 의정부 관리를 갈아치우며 부와 권력 쌓기에만 몰두했던 군주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유교 자체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망국론을 보수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유교정치의 핵심을 그는 요즘 말로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으로 풀이하는데, 유일한 망국의 원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유교 이념의 고갱이였던 도덕성의 붕괴가 조선을 품위없는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저자의 견해는 일리가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