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한 채 억류됐던 미국인만 데리고 나온 것을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 그의 방북 목적이 사전 합의됐던 미국인 석방에 있었던 만큼 김 위원장 면담 실패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카터의 방북에 북미대화를 위한 '탐색전'의 성격이 있었다면 결과는"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병존한다.
미 행정부는 일단 억류 미국인이 석방된 데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는 카터 방북에 대해 정치적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시각이 여전히 담겨 있다. 미국은 카터의 방북을 "인도주의 목적을 위한 순수한 개인적 방문"으로 규정, 그의 방북이 미국인 석방 이외 북미 간 정치현안을 논의하는 하는 '대화의 자리'로 여겨지는 것에 한사코 반대했다. 현 국면이 북미대화를 타진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을 뿐더러 카터 전 대통령이 만에 하나 미 행정부의 지침을 벗어난 '돌출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워싱턴 소식통들은 카터 측이 사적 채널을 통해 방북협상을 한 뒤 방북 승인을 요청해와 미 행정부가 이를 허락한 것일 뿐, 당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사전에 당국이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면담을 상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 카터 측과 미 당국 간에 정책적 소통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카터와 김정일의 만남 자체에 적지 않은 정보가치가 있는 만큼 이를 은근히 기대했던 미 행정부로서는 아쉬운 결과일 수 있다는 시각도 많다. 특히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불러놓고 방중길에 오른 것을 두고 의도적 홀대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이 1994년 1차 핵위기 때 북한을 방문해 열렬한 환대를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초청과 홀대라는 모순된 북한의 행보는 미국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압박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비핵화 조치 등 한미가 요구하는 6자회담 조건에 응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북중'과 '한미'의 구도가 더욱 선명히 나뉘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가 상당기간 더욱 노골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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