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에 대해 미 행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미국의 대북기조나 6자회담의 조건에 변화를 주는 요인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는 26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방중에 관한 논평 요구에 “내가 확인할 사항이 아니다. 북한 당국에 물어봐라”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회담이 생산적일 것이라는 확신을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말로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무관심한 듯한 반응과 달리 미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착하고 파장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면담이 불발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우다웨이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북한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하고 김 위원장이 다시 중국을 전격 방문한 것이 한미양국의 대북 제재 및 6자회담 기류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한미 합동훈련 이후 중국과 북한의 ‘탈 천안함 및 6자회담 재개 공세’가 예상외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북중 간의 일련의 움직임을 천안함 사태 이후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미 군사훈련과 같은 안보상의 위협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고, 북한 역시 제제국면 탈피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으로 북중이 “괴로운 국면”에 처했다며 이를 하루빨리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한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하면서, 6자회담 재개 등에서 한국의 입장이 다른 당사국들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현 구도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이 변했구나’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 한 미국이 북중의 움직임에 맞춰 대화국면으로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미 정가의 기류이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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