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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21) 마당발 인맥으로 제2인생 일군 전 교보보험심사 대표 유석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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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21) 마당발 인맥으로 제2인생 일군 전 교보보험심사 대표 유석쟁씨

입력
2010.08.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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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쟁(56)씨가 교보보험심사 대표를 끝으로 회사에서 은퇴한 것은 2009년이다. 그는 회사를 나왔지만 지금 더 많은 일로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명함만 11종, 직함은 34개나

그가 지금 들고 다니는 명함은 무려 11종. 게다가 그 명함들 뒷면에 적혀있는, 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직함의 수는 무려 34개에 이른다.

명함의 직함에서 그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다. 진주 류씨 중앙종친회 이사, 재경향우회 영암군 이사, 군서남초교(영암) 사무총장, 구림중(영암) 사무총장, 청원중고(옛 동대문상고) 총동창회 사무총장, 서울교대 출사회 사무총장, 건국대 행정학과 사무총장 등등.

전남 영암의 배고픈 시골서 자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서울의 형님 집에 올라와 고등학교와 교대를 마쳤고,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건국대 행정학과 야간 수업을 받으며 자신의 꿈인 4년제 대학 공부도 끝냈다. 이후 대졸 공채 기준에 턱걸이하는 꽉 찬 나이로 교보생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영업소 총무로 시작해 주임 영업소장 과장 부장 팀장 상무 지역본부장 등 회사의 본사와 현장을 거치며 웬만한 보직을 다 거쳤다. 지점장을 5군데나 돌았고, 지역본부장으론 3군데나 총괄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으로 시작한지 20여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라 교보보험심사 CEO로 5년을 지냈다.

그의 이름도 독특하다. 유씨는 "이름에 '쟁'이 들어가는 건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문서당 훈장을 했던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만 그 뜻을 일러주시지 않고 돌아가셨어요. 그 뜻을 찾아내는 것이 내 삶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 등에 개설되는 CEO과정만 고려대 서강대 전경련 순천향대 건국대 한국체대 한국종합예술학교 등 7군데를 다녔다. CEO과정을 7번이나 다닌 덕인지 9월부터는 한양대에서 배우는 입장이 아닌 문화예술CEO과정 주임교수로 강단에 서게 된다.

각종 사무총장과 CEO과정들을 통해 쌓은 인맥을 힘으로 바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어느 신문인가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사에 '형님만 800명, 마당발'이란 제목을 달렸더군요. 그래서 저도 제가 형님이라 부르는 이들을 세어봤는데 1,500명이 넘더군요."

부부 30쌍 이름 즉석에서 외워 소개

그가 사회를 맡는 모임에선 2번째 모일 때부터 바로 형님 아우님으로 서로의 호칭이 시작된다고 한다. 기준은 '민증'의 나이다. 그는 모두 신분증을 꺼내라 하고 바로 직접 시범을 보인다. 때론 자존심도 상할 수 있고,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일단 형님 아우님으로 부르고 나면 모임은 금세 화기애애해진다. 친밀도가 견고해져 그 모임은 다른 모임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전경련CEO과정 동기생들과의 모임이었다. 동기들과 중국으로 부부동반 워크숍을 갔었다. 저녁식사 후 2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역시 사회는 그의 몫이었다. 당시 참석한 원우만 30여명. 서로 얼굴을 맞댄 건 이제 두어 번 뿐이었다. 그는 단 한 장의 메모도 없이 원우들을 한 명씩 불러 세우고는 이름을 부르고 그가 하는 일을 소개했다. 그리곤 동반한 부인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외워 소개했다. 그가 소개하는 동안 행사장은 숨죽이듯 조용해졌다. 한 명이라도 이름이 틀리지 않을까 지켜보는 기색이었다. 단 한명의 실수도 없이 소개를 다 끝내자 기립박수가 돌아왔다. 그는 "교보생명 시절 인사과장을 하며 전직원의 이름과 특징들을 익히면서 훈련한 것"이라고 자신의 특별한 기억력을 설명했다.

그는 각종 애경사엔 어떻게든 참석하려고 한다. 기쁨은 함께 좋아하고 슬픔은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람의 도리. 외국만 아니면 제주까지도 다 달려간다. 얼마 전에는 경남 진해로 조문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아는 CEO의 부친상이었다.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이 겹쳐져 있는 상황. 그는 김포공항에 오전 6시30분에 가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서 바로 택시로 진해 장례식장으로 가서는 타고 간 택시를 대기시켜놓고 딱 4분 조문을 하고는 다시 김해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 도착시간은 오전 8시40분. 9시 출발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애경사에 참여 못하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의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 약속도 그렇죠. 점심 저녁이 꽉 차있으면 아침으로 약속을 잡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는 저녁 스케줄도 많을 땐 3번을 겹쳐 잡는다. 첫번째 모임에선 애피타이저를 먹고, 두번째 자리에 가서 메인 식사를 한 뒤, 세번째 모임에서 디저트를 즐기면 충분히 3번의 모임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하루를 2시간씩 끊어 시간을 나눈다. 1시간 만나고 남은 1시간 이동을 하고 하면 7, 8번의 만남이 가능하다. 불가피할 때는 밤 10시에 만나는 약속도 잡으며 일정을 소화해낸다. 약속으로 새카만 그의 수첩에 별표가 표시된 건 골프 약속이다. 한 달에 그가 치러야 할 비즈니스 골프는 적을 때도 13번이라고 한다. 많을 때는 21번도 나갔다.

인맥 자산으로 10개 기업 사외이사ㆍ고문 활동

회사 대표를 할 때보다 더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탓에 매일 집에는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간다. 집안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다행이 아내가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도와준다. 시간 날 때마다 아파트 지하의 헬스장을 이용하고, 주중엔 비즈니스 골프로, 주말엔 등산으로 건강을 챙긴다.

그의 오랜 회사 경험과 깊고 넓은 인맥은 다른 일반 기업체에서도 무척이나 탐을 낸다. 그는 회사 대표를 그만두고 현재 인성내츄럴, 블랙박스 코리아, 포맨해운항공 등 6개 회사에서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고, 골프클럽Q안성, LS공조, 케어카라 등 6개 회사의 고문을 하고 있다. 또 본인이 직접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서 선심농원이란 꽃집도 차렸다. 화원은 주변 분들의 추천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취임이나 승진, 조문 등 꼭 인사를 할 때 필요한 꽃들 가지고 사업을 차리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역시 그의 두터운 인맥 덕분에 대표이사 출신 꽃집 주인의 화원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사회생활서 쌓은 경험·인맥 적극 활용하세요"

유석쟁씨는 교보보험심사 대표를 물러나면서, 은퇴 후 지켜야 할 5가지 원칙을 세웠다. 은퇴 전에는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잘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의 5원칙은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양보하며 살자'는 것.

그의 직함 중 가장 많은 것이 사무총장이다. 무려 15곳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사무총장이란 게 모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총무 역할이다. 무보수로 봉사만 하는 일인데도 그는 너무 즐겁다고 한다. "제 노력으로 많은 이들이 모여 흐뭇한 만남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밤새 자료 만들고 회원들 연락하느라 고생했던 것을 금세 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은퇴가 너무 빠른 건 아닌가 되묻는다. "사회생활을 통해 쌓아온 엄청난 지식과 인적 네크워크가 그대로 사장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는 사회적 낭비이고 손실이에요. 은퇴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기업도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제게 사외이사나 고문을 맡긴 기업들도 제 과거의 경험과 인맥을 활용하고자 하는 곳들입니다. 저도 고맙게도 은퇴한 저를 불러준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는 은퇴를 맞는 사람들도 의기소침해있지만 말고 더 바쁘게 살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과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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