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대전 대덕구에 자리한 국내 최대 폴리에스터 생산회사 휴비스 중앙연구소. 실험실 곳곳에서 연구원들의 실험이 한창인 가운데 특이하게 여기저기에서 페트병들이 눈에 띄었다. 김춘기 연구원은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원사로 다시 뽑아 낸 섬유로 옷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며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유니폼도 이 페트병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올해 페트병 원사 ‘에코에버’만 팔아서 30억 이상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재활용이 진화하고 있다. 환경 살리기 차원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다시 쓰는 수준을 넘어, 높은 기술력을 앞세워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춘 혁신 제품 생산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것. 기업들은 재활용 제품 생산을 위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정부 역시 제품 및 포장재 별로 재활용 의무 비율을 제시하며 재활용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우선 휴비스의 ‘에코에버’의 경우 기존 원사에 비해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30% 가량 줄이고 석유 원료를 거의 쓰지 않는 친환경성은 기본. 여기에 땀을 빨리 흡수하고 건조시켜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기능과 악취를 없애는 기능이 일반 기능성 섬유 못지 않은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박성윤 팀장은 “이물질을 걸러내는 필터 기술과 페트병을 부숴 나오는 미세 조각들을 가지고 기존 재료와 똑같은 성질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등이 최고의 무기”라며 “2008년부터 1년 넘게 연구개발 끝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에코에버는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지난해 2월 우리나라 최초로 공식 원사로 지정했다. 박 팀장은 “나이키 본사 관계자들이 재료 확보, 생산, 기술 관리 등 모든 과정을 꼼꼼히 따져본 다음 인증 규정을 통과시켰다”며 “전 세계 11개 업체만 등록됐고 이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의 수출 길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솔제지는 최근 국내 최초로 버려진 종이를 재활용한 친환경 재생아트지 개발에 성공했다. 보통 재생 원료 쓴 재생 용지는 질이 낮다 보니 판지류나 저급 인쇄용지로 쓰이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 한솔제지는 사보, 고급 카탈로그, 팸플릿 등 고급 인쇄물 용으로 쓸 수 있는 고품질 재생 용지를 만들어 낸 것.
회사 관계자는 “버려진 종이를 30% 사용하면서도 천연펄프를 쓴 아트지와 똑같은 최고급 품질”이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탈묵(잉크제거ㆍDe-inking) 공정 설비를 갖추고 있고 여기에 업계 최고 수준의 재생 원료 처리 기술과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일본 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펄프 대신 폐지를 집중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설비, 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인쇄용지 시장에서 친환경 재생용지가 25%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아트지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전량 수입해야 하는 천연펄프를 원료로 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260만톤 이상의 펄프를 수입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양시멘트는 버려진 타이어, 철강 슬래그(제련 후 남은 찌꺼기ㆍSlag) 등 폐기물을 해마다 50만톤 이상 활용해 ‘에코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남부발전은 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전기 분해, 개미에서 발견되는 천연물질인 개미산(酸)을 추출하는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개미산은 동물용 사료 방부제, 영양제, 의약품 등 유독성 화학물질의 대체 물질로 각광 받고 있는데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쓰다 버리는 전자제품에서 산업에 필요한 소재를 추출하는 ‘도시광산’ 기업들도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재활용 관련 제조업 분야에 있어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이 많이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도시 광산 관련 기술 지원을 위해 2014년까지 8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재활용 제품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적극적으로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전=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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