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ㆍ68) 일본 민주당 전 간사장이 마침내 대권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40대 자민당 간사장으로 일찌감치 촉망 받았지만 번번이 총리가 될 기회를 놓친 일본 정계의 ‘큰손’ 오자와가 40년 정치인생 중 대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
오자와가 정계에 몸을 담은 것은 중의원의원이던 부친의 급사로 지역구를 물려받은 27세 때였다. 게이오(慶應)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법조인을 꿈꾸고 다시 니혼(日本)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법조문을 읽던 대학생 시절이다.
파벌 정치가 드셌던 당시 자민당의 주류 다나카(田中)파에 속해 두각을 나타낸 오자와는 1982년 자민당 총무국장을 맡아 이듬해 교토(京都)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1인 후보를 옹립하자는 당내 다수 의견에 반대해 2인 후보를 관철시켜 모두 당선시켰다. ‘선거 귀재’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이 다나카파를 뛰쳐 나올 때 합류해 자민당의 중심적인 존재로 부각됐고 1989년 47세라는 당시로서는 젊은 나이에 자민당 간사장에 올랐다. 총리 자리가 멀지 않아 보였던 그였지만 1993년 미야자와(宮澤)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해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자민당을 뛰쳐나온다. 이후 30년 가까이 신생당, 신진당, 자유당으로 잇따라 신당을 만들었다 해체했고 호소카와(細川), 하타(羽田), 무라야마(村山), 오부치로 이어지는 연립내각의 ‘킹 메이커’ 노릇을 하며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해왔다.
오자와 정치인생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물론 지난해 민주당 정권교체다. 자유당 대표로 2003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와 간 나오토(菅直人)가 이끌던 구 민주당과 합쳐 새로운 민주당을 만든 뒤 2005년 중의원 선거를 제외하고 모든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권교체의 발판을 다진 사람은 사실상 오자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숱한 정계 개편의 이력과 끊이지 않는 정치자금문제 때문에 그에게는 늘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되더라도 오자와가 일본 국민의 불신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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