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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 활용한 생체모방 전성시대/ 이별에 울어도 화장이 그대로…연꽃잎의 비밀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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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 활용한 생체모방 전성시대/ 이별에 울어도 화장이 그대로…연꽃잎의 비밀 덕!

입력
2010.08.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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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몸은 첨단과학의 집합체다. 아무리 복잡한 기기라도 생명현상의 정교함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동식물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연구자료인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자들이 잇따라 생체를 본뜬 기술을 내놓았다. 생체모방기술(바이오미메틱스)이 최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배경엔 나노(1나노미터=10억분의 1m)기술이 있다. 생체 내부의 미시세계를 한층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강철보다 강한 거미줄 대량생산

거미는 7가지 종류의 명주실(실크)을 만들어낸다. 그 중 수직으로 빠르게 내려갈 때나 거미줄의 기본 골격을 만들 때 사용하는 게 드래그라인 실크다. 튼튼하다. 강도가 미국 화학회사 듀폰이 1971년 내놓은 인조섬유 케블라와 맞먹는다. 강철과 같은 굵기로 만든 케블라 섬유의 강도는 강철의 5배나 된다. 과학자들은 거미의 드래그라인 실크 정도 강도면 방탄복이나 낙하산, 외과용 실, 인공인대, 건축용 케이블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미를 키워 일일이 실크를 뽑아내기란 여간 번거롭지 않다. 양도 너무 적다. 이에 곤충이나 효모 대장균 같은 다른 생물을 이용해 대신 거미 실크를 대량생산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많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거미 실크 단백질의 독특한 구성 때문이다. 드래그라인 실크 단백질은 40% 이상이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리신으로 이뤄져 있다. 실크가 만들어지려면 그만큼 글리신이 많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생존을 위해 여러 아미노산을 고루 생산해야 하는 생물이 특정 아미노산을 집중적으로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상엽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대장균 유전자를 조작해 글리신 생산에 필요한 수나노미터 크기의 중간물질이 많이 만들어지게 했다. 드래그라인 실크의 원료가 풍부해지도록 유도한 것. 이 대장균이 합성한 실크를 섬유 형태로 만들었더니 강도가 케블라 수준이었다. 한 세대가 1년 가까이 되는 거미와 달리 대장균은 불과 30∼40분이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많은 실크를 얻을 수 있다.

이 기술은 산업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다른 단백질에도 응용 가능하다. 연구팀의 이정욱 박사후연구원은 “물리적 성질이 우수한 엘라스틴이나 피브로인 콜라겐 같은 단백질도 글리신 함량이 10% 이상으로 많아 드래그라인 실크와 동일한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 싫어하는 초소수성 미세입자 제작

흙탕물 속에서도 깨끗한 연꽃잎은 오래 전부터 생체모방기술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매끈한 듯 보이는 연꽃잎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돌기가 무수히 돋아 있다. 돌기 끝부분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더 작은 돌기가 오톨도톨하게 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꽃잎은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초소수성을 갖는다. 연꽃잎에 물이 닿으면 퍼지지 않고 방울 형태로 뭉친다.

연꽃잎 위에서 뭉친 물방울은 그대로 흘러내리며 먼지를 쓸어 내린다. 자기세정효과다. 이를 응용하면 세차가 필요 없는 자동차나 김이 서리지 않는 유리, 비에 젖지 않는 섬유, 스스로 세정하는 페인트, 눈물에 얼룩지지 않는 화장품, 물위를 걷는 마이크로로봇 등을 개발할 수 있다.

양승만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연꽃잎 구조를 흉내 낸 미세입자를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먼저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친수성 유리구슬들을 기름과 비슷한 감광성(感光性) 액체에 분산시켰다. 유리구슬을 머금은 감광성 액체 방울을 물속에 넣었더니 유리구슬들이 일제히 액체 방울 표면에 배열됐다. 이때 자외선을 쪼여 감광성 액체를 고체로 바꾼 다음 유리구슬을 제거하니 골프공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미세입자가 됐다. 여기에 특수한 가스를 가한 결과 미세입자 표면에 실제 연꽃잎처럼 굴곡이 있는 나노구조가 형성됐다. 양 교수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허철준씨는 “평평하지 않고 굴곡 있는 표면에 연꽃잎 구조를 만든 건 처음”이라며 “미세입자 구멍 안에 공기가 차 물을 밀어내는 효과를 내 초소수성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인공뼈 접착제 아이디어는 홍합에서

홍합은 몸에서 실처럼 생긴 분비물(족사)을 내 바위나 수초(水草) 표면에 붙어 산다. 물기가 묻어 표면이 미끌미끌해도 잘 붙을 만큼 접착력이 강하다. 족사에 들어 있는 도파라는 성분 때문이다. 도파는 특이하게도 붙고자 하는 표면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족사와 표면 간 화학결합을 만들어낸다.

이해신 화학과 교수와 박찬범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홍합의 접착력을 응용해 뼈를 인공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뼈를 이루는 칼슘성분의 99%는 인산화칼슘. 인산화칼슘을 지지체 위에서 고속으로 성장시켜 인공뼈를 만들려는 아이디어는 오래 전에 나왔다. 그러나 인산화칼슘이 다른 물질 표면에 잘 달라붙지 않아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도파가 녹아 있는 물에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셀룰로오스처럼 실제 뼈 구조와 유사한 다공성(多孔性) 물질을 넣었다. 그리고 인산화칼슘 용액을 처리했더니 다공성 물질 표면에 인산화칼슘이 잘 달라붙었다. 다공성 물질에 도파가 깊숙이 스며들면서 인산화칼슘을 붙이는 접착제가 고루 발라지는 효과를 낸 것.

이 교수는 “뼈를 생성시키는 세포가 인산화결정에 달라붙으면 인공뼈가 형성된다”며 “치아 임플란트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세한 표면이나 구조 분석이 가능한 나노기술이 최근 생체모방 분야에 활발히 쓰이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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