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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스크린… '잔혹 경쟁' 어디까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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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스크린… '잔혹 경쟁' 어디까지 가나

입력
2010.08.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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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다”는 냉소가 쏟아진다. “모험 정신에 갈채를 보낸다”는 호평도 만만치 않다. 많은 연인들이 극장 문을 나서며 ‘먼저 보자 한 사람이 누구냐’를 놓고 다투다 갈라선다는 우스개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영화 ‘아저씨’(감독 이정범)와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의 잔혹성을 둘러싼 설전이 염천 극장가의 온도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너무 잔인하다”는 일부 관객의 볼멘 소리와 “현실은 더 잔혹하다”는 목소리가 예리한 각을 세우는 가운데 24일까지 ‘아저씨’는 375만5,71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악마를 보았다’는 130만9,670명이 찾았다.

스크린이 그 어느 때보다 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무엇이 이토록 충무로를 잔혹에 탐닉하도록 한 것일까. 지금 극장가에 펼쳐지는 피와 살점의 냉기 어린 향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여전히 드리운 ‘추격자’의 그림자

많은 영화인들은 2008년 ‘추격자’의 성공이 피비린내 나는 영화들을 불러냈다고 입을 모은다. 연쇄살인마를 쫓는 전직 형사의 분투를 처절하게 그려낸 ‘추격자’는 507만 관객을 모으며 스릴러 성공시대를 열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잔혹한 묘사가 많은 ‘추격자’가 ‘스릴러는 돈이 안 된다’는 속설을 무너뜨리면서 스릴러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고 평가했다.

‘스릴러 필패’의 속설이 뒤집어지면서 ‘핸드폰’ ‘용서는 없다’ ‘파괴된 사나이’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 등이 앞다퉈 쏟아졌다. 연중 최고 대목으로 꼽히는 올해 여름시장에도 스릴러가 대세였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많은 감독들이 완성도 있으면서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스릴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스릴러 장르가 히트하면서 표현의 강도가 커졌고 최근의 잔혹영화로까지 이어진 듯하다”고 분석했다. 과열경쟁을 벌이면서 폭력의 표현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잔혹성 뒤엔 상혼이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관객들이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풀기 위해 잔혹한 장면을 원할 것이라고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자극적인 장면 묘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새기려는 감독들의 욕심과 상혼이 결합된 결과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현재 한국의 현실이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강렬한 극적 효과를 지닌 영화를 원하는 것 같다. 연쇄살인 사건에 무기력한 공권력의 모습 등 현실에 대한 분노가 표현의 과잉으로 나타나는 듯 하다”고 분석했다.

“한국영화에 독” vs “영화적 모험으로 봐야”

잔혹한 묘사로 논쟁에 오른 영화들이 충무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단기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관객을 극장에서 내쫓을 것”이라는 주장과 “한때의 유행으로 새로운 영역 개척을 위한 한국영화의 모험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심영섭씨는 “피해자 입장으로 감정이입 하기엔 무기력하고 복수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도 고통스러운 영화로 특히 여성관객들에겐 지옥과도 같다”며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이런 기획은 다양성 부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황진미씨는 “이런 영화가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느 정도 성공하겠지만 결국 제살 깎아먹기가 될 것 같다. 마치 연금을 미리 타 쓰듯 영화계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결과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영진씨는 “관객을 불편하게 하면서 압도하는 게 한국영화 발전의 힘이었다”며 “현실과 다른 말랑말랑한 영화만 보며 감동을 얻는 것도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찬일씨는 “영화의 잔혹함만으로 그 영화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은 시각적으로 승부하는 시대이니 보여주는 게 강조되는 스릴러가 당연히 대세”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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