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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마지막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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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마지막 와인

입력
2010.08.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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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와인을 마신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의 와인셀러에 남아있던 단 한 병의 와인. 오랫동안 레드와인을 보관하기 적정한 온도 속에서 제 색과 향을 품고 누워있던 와인 한 병. 우리는 그 와인을 마지막 와인이라 불렀다. 초대한 친구에게 그 와인은 생을 휘감고 간 열풍처럼 뜨거운 시간의 추억이었다.

와인 모임에 열정적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경쟁하듯 와인을 탐닉했다. 저녁노을을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와인은 가장 어울리는 코드였다. 우리를 'nomad'라 이름했다. 우린 상처받은 영혼의 유목민들이었다. 친구는 바람처럼 떠돌았다.

몽골의 초원에서, 지중해의 작은 섬에서, 북해도 폭설 속에서, 이름 모르는 먼 사막에서 엽서가 날아왔다. 집으로 돌아올 땐 몇 병이 와인이 함께 와 와인셀러를 채웠다. 친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와인은 사랑의 기념사진 같은 것이었다. 친구는 어느 날부터 와인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취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와인 한 병이 남았을 때 눈물도 끝이 났다. 마지막 와인의 코르크 마개가 열렸다. 2002년 빈티지의 프랑스 와인의 부케가 오묘하게 퍼져 나왔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 향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의 향기와 색깔이 와인 잔에 오롯이 담겼다. 나는 차마 그 잔을 들 수 없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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