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의 女心을 흔들고… 화장품 실크로드 열었다
지난달 21일 상하이의 명품 거리인 난징시루(南京西路)에 위치한 최고급 백화점 쥬광(久光)백화점. 에스티 로더, 랑콤 등 유명 브랜드와 나란히 입점해 있는 1층 화장품 코너의 LG생활건강 오휘ㆍ후 매장을 찾은 40대 여성은 제품을 피부에 발라 본 후 감탄사를 연발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방문했다”는 그는“기존에 사용하던 에스티 로더(미국), 헬레나 루빈스타인, 크리스찬 디오르(프랑스) 등의 브랜드 제품보다 보습효과가 훨씬 뛰어난 느낌”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내수시장에 주력했던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수출 역군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한류(韓流)에 힘입어 안착에 성공한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시장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 업체들은 뛰어난 품질을 앞세워 몇몇 한류스타를 통해 현지에 소개된 한국의 아름다움을 계승ㆍ확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화장품 산업이 또 다른 한류상품이 된 셈이다.
대표주자는 올해로 중국 진출 17년째를 맞는 아모레퍼시픽이다. 본격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상하이법인을 세우고 라네즈 브랜드를 선보인 2002년부터. 한국의 브랜드를 넘어 ‘아시아 브랜드’로 만든다는 목표로 3년 간의 사전 준비와 3,500명의 현지 소비자 조사를 거쳐 첫 선을 보인 후 현재 백화점에서만 180개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화장품 전문점 유통 상품으로 출발한 한국에서보다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출 면에서도 최고가(high-end)보다 조금 낮은 가격대(entry premium) 제품군에서는 미국 브랜드 크리니크, 비오템보다 규모가 더 크다. 난징루 신스졔(新世界)백화점에서 만난 탕징우웨(唐靜偉) 화장품 매장 관리과장은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인의 피부가 좋은 이유를 화장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이 회사의 대중 브랜드인 마몽드는 277개 백화점 매장과 2,010개 전문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두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매출은 55% 늘었다.
올해로 중국 진출 15주년인 LG생활건강 역시 2005년에 오휘를, 2006년에 후를 선보이며 고급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동안 미네르바, 실키, 뜨레아, 이자녹스 등 다양한 브랜드를 판매해 온 LG생활건강은 현재는 오휘와 후를 주력 브랜드로 삼고 있다. 전체 화장품 시장 점유율도 중요하지만 ‘한방 화장품’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먼저 상위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50여개의 오휘ㆍ후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LG생활건강은 상하이의 바바이반(八百伴)과 쥬광(久光), 베이징의 앤샤(燕莎) 등 대도시 최고급 백화점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모두 이들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들 화장품 업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중화권 시장의 큰 그림을 보고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이번 하반기에 라네즈, 마몽드에 이어 고급 브랜드인 설화수를 중국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홍콩의 명품 거리인 침사추이 캔톤로드에 4개층으로 구성된 설화수 스파를 열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격전지이기도 한 홍콩에서는 이미 2004년부터 설화수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중국 진출을 앞두고 홍콩 소고(SOGO) 백화점에 먼저 1호점을 성공적으로 열었던 라네즈의 케이스처럼 홍콩 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중국 소비자가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설화수 스파에서 만난 매니저 사만다 탕씨에 따르면 설화수가 일본 브랜드인지 한국 브랜드인지조차 모르고 호기심에 방문한 고객 중 절반이 스파 서비스 예약을 하고 갈 정도로 이 매장의 브랜드 인지도 확산 효과는 뛰어나다.
대만도 무시 못할 시장이다. 화장품 시장 규모는 한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홍콩처럼 중국 대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만과 중국이 체결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따른 차이완(China+Taiwan) 파워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간과해선 안될 지역이다.
현재 대만 시장에서는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 등 가두점 브랜드와 애경의 조성아 루나 등 홈쇼핑 브랜드가 선전하며 현지 소비자에게 한국 제품의 좋은 이미지를 심고 있다. 타이페이의 번화가인 스린야시장에 밀집해 있는 한국 브랜드숍 중 네이처 리퍼블릭의 매니저 제리카 장씨는 “처음에는 한류스타 모델의 사진이나 특이한 포장을 보고 호기심에 매장은 찾은 고객도 막상 써 보면 품질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의 화장품 시장 개척에 대해 현지 법인 관계자들은 ‘실크로드’에 비유했다. 김봉환 아모레퍼시픽 중국법인장은 “중화권 시장은 그 자체로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첫 단계로서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종의‘뷰티로드’”라고 말했다.
상하이ㆍ홍콩ㆍ타이페이=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인터뷰/ 린치펑 대만 모모홈쇼핑 총경리
“대만인은 한국 기업을 라이벌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제품에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을 바꿔 놓은 게 바로 한국의 화장품입니다.”
대만의 대표적인 홈쇼핑 업체 모모홈쇼핑은 지난해 말부터 애경의 홈쇼핑용 색조 화장품 세트인 조성아 루나를 수입ㆍ판매, 올 상반기 6개월 간 3만개를 팔았다. 금액으로는 약 27억원 상당으로, 모모홈쇼핑의 색조 화장품 카테고리 중 1위의 판매 기록이다.
린치펑(林啟峰) 모모홈쇼핑 총경리는 “소비자 요구 파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한국 화장품의 장점을 칭찬했다.
그는 “흔히 ‘아시아의 화장품’ 하면 일본 제품을 떠올리게 되는 게 사실이지만 한국 제품은 품질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 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며 “특히 제품 포장 등에도 큰 의미를 두는 대만 소비자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린 총경리는 “호기심이 강한 대만 소비자는 새 제품을 시도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지만 그 만큼 쉽게 제품에 싫증을 내는 만큼 같은 브랜드의 제품도 최대 6개월이 지나면 다른 구성과 포장으로 소비자를 공략해야 한다”며 “조성아 루나는 이 같은 상품 디자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또 주기적으로 바꿔 주면서 소비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의 화장품 제조업체들은 품질 향상과 제품 개발에는 기민하게 움직이는 반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소홀한 게 현실”이라며“대만에서 계속 경쟁력을 갖추려면 드라마 등 문화 한류와 연계, 부족한 마케팅파워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
김소연기자
■ 중국 고급 화장품 시장 급성장 위기이자 기회
“2, 3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중화권에서 만난 한국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소비자의 행태가 급변하고 있고 세계 각지의 유명 화장품 업체들이 중국의 고급 화장품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번스타인 리서치는 1990년대까지 전체 화장품 시장 중 10% 대에 불과했던 고급 브랜드 시장이 24% 규모로 성장했으며 2014년에는 27%에 달해 저가 브랜드 시장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그간 중고가(entry premium) 제품을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온 국내 화장품 업계에 지금의 중국 시장은 큰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을 앞세운 이제까지의 전략에서 벗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된 셈이다.
현지 유통 관계자들도 이 점을 한결같이 지적한다.
상하이 쥬광백화점의 시니어 매니저인 위더친(俞德勤)씨는 “현재 라네즈, 오휘 등 한국 브랜드 화장품은 새로운 고객을 불러들이기 보다는 기존 백화점 고객에 의존해 영업 활동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며 “더 많은 이들이 브랜드에 친숙해지도록 각종 매체를 활용해 브랜드의 특색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최대 화장품 유통사 중 하나인 샤샤(Sasa)의 홍보부장 메이시 렁씨도 “한국 화장품은 좋은 가격과 품질로 홍콩과 중국 소비자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를 소비자가 확실히 인지하도록 대표 제품을 중심으로 광고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준규 코트라(KOTRA) 상하이 코리아비즈니스센터(KBC) 차장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한국 화장품은 고급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비교적 성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장기적으로 유럽ㆍ일본 브랜드 등과의 인지도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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