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정기적으로 독거 노인들에게 밑반찬을 대주는 봉사기관과 함께 남산 쪽방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은 3,000세대로 늘었다고 하는데 당시는 약 1,000 세대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그야말로 벌집 같은 곳이었다. 월세로 계약할 수도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인들에게 한 달에 18만 원하는 월세방은 그림의 떡이었다. 대부분이 거주하는 일세방은 0.5평 크기의 7,000원짜리와 1평 크기의 8,000원짜리가 있었는데, 7,000원짜리가 다 찬 후에 8,000원짜리가 차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돈 대신 명예 잃은'노후대책'
주로 볼펜을 팔거나 박스를 주워 파는 이들이 1,000원만 더 벌면 그나마 몸이라도 뒤척일 수 있는 2배 넓은 방에서 잘 수 있는데, 1,000원 때문에 작은 방을 선택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을 돕는 목사님으로부터 폐지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들이 1,000원을 벌기 위해 어떨 때는 3시간 넘게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1,000원 때문에?"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던 나 자신의 경솔함을 몇 번이고 꿀꺽 삼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강남에 살면서 상가가 이미 3채나 있는 고위 공직자가 노후 대비를 위해 개발정보를 입수하고 창신동 쪽방 주택을 구입했다고 한다.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의 아내가 쪽방에 투자한 것은 차관보 때였다고 한다. 정무직인 장차관 다음의 차관보는 직업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위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 다윗 왕은 부하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그 부하를 극심한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한다. 선지자는 왕의 잘못을 이렇게 비유한다. "양과 소가 많은 부자와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인 가난뱅이가 있는데, 하루는 부자에게 손님이 오자 그는 자기 소유를 아껴 가난뱅이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대접을 하였다." 다윗은 자기를 가리키는 줄 모르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은 부자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분노한다. 선지자는 그 부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자 다윗은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한다.
그가 범부라면 모를까, 한 나라의 장관 후보자라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깨끗이 사퇴하라고 권하고 싶다. 돈과 권력은 취하지만 명예를 잃는다면 진정한 노후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미 보수언론조차 이 장관 후보자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데도 청와대는 인사를 철회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은 한나라당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기왕에 반대하고 있는 야당에 더하여 한나라당이 정략을 넘어 반대의견을 표명한다면, 청와대가 밀어붙이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장관을 못할 정도의 치명적 하자는 아니라거나, 도적 비난은 좀 받을 수 있지만 업무능력이 탁월하여 봐 줄만 하다거나, 불순한 의도는 아닌 것 같다거나 하는 말이 돈다고 한다. 심지어 값이 하락하여 실패한 투자였다는 동정론도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일부의 허튼 소리
무더위에 며칠 밤 잠을 설친 탓에 나온 허튼 소리도 이럴 수는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보수'가 지키겠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살얼음 낀 찬물에 세수했을 때의 맑은 정신으로 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자신의 키보다 높은 폐지 더미를 수레에 싣고 그 위험한 도로를 개미처럼 밀고 가는 많은 할머니들이 있을 것이다. 자동차 경적소리에도 꿈쩍 않고 허리는 거의 'ㄱ'자로 휘어진 그 모진 목숨들이 질척이는 빗속에 선풍기 하나 없는 어두운 쪽방을 드나들 때, 노후를 생각하며 부동산중개소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그들. 잘못된 투자 판단으로 손해를 보았으니 봐줄만하다고 감싸는 여당.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할 것도 없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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