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호황 단꿈 깨고 건설 영토 확장 '새 꿈'
#. 김종인 대림산업 사장은 올해 초 경영전략회의에서 부하 직원이 의아하게 여기는 주문을 내놨다. 대림산업의 강점인 공공부문 토목사업을 줄이는 대신, 해양 특수교량과 같은 해외 토목부문에 주력해 달라고 당부한 것.
#. 대우건설 서종욱 사장도 올 들어 틈만 나면 2005년의 ‘디오빌’ 신화를 잊을 것을 주문한다. 당시 대우건설은 도심 소형가구 브랜드인 ‘디오빌’분양이 주택시장 호황과 맞물려 대박을 터뜨리면서 2006년 현대건설을 꺾고 시공능력 1위에 올랐다. 서 사장은 “이제는 플랜트와 발전 부문을 토대로 미래 신성장동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8월. 국내 건설업계는 위기에 빠져있다. 이유는 ‘성공의 저주’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8년 초반까지 국내 건설업체는 ‘주택경기 호황’의 단맛에 빠져,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토목이나 해외진출 등 업종 다각화보다는 당장에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만 매달리다가, 금융위기로 주택시장이 급랭하면서 상당수 업체가 퇴출되거나 워크아웃에 빠진 상태다.
하지만 ‘멸산흥업(滅産興業ㆍ망한 산업에서도 흥한 기업)’이라는 말처럼 30년 이상의 연륜을 쌓은 리딩 건설업체는 끝없는 변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성공 코드를 과감히 버리고 극한 공법이 필요한 신규 분야를 개척하거나, 글로벌 업체와의 대결이 불가피한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아라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는 위기 극복을 열쇠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 연초 예상치 못한 최고경영자(CEO)의 주문에 따라 해외시장 다변화에 주력한 대림산업은 최근 베트남에서 1억3,800만달러 규모의 항만 조성공사를 수주했다. 회사 관계자는 “75년 철수 이후 35년만에 베트남에 재진출한 것”이라며 “국내 위주였던 토목사업을 동남아 시장으로까지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친환경 건축물, 문화체육시설, 첨단 병원시설 등의 분야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미 아부다비에서 첨단 의료시설인 ‘클리블랜드 클리닉’ 건설 공사를 수주해 시공 중이며, 북미와 중동, 아프리카에서도 대규모 체육시설과 병원시설 공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차원의 유동성 위기로 한때 곤란을 겪은 금호건설도 2000년 중반 이후 공을 들여온 베트남 시장에서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올 들어 국내 업체의 해외건설 수주액도 지난 23일 50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이는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였던 작년 실적(491억달러)를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극한공법에 도전한다
단순한 주택시공에서 벗어나 ‘세계 최초’ 혹은 ‘국내 최초’라는 호칭이 붙는 극한공법으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
대우건설은 국내 최초로 해저 침매방식(육상에서 ‘ㅁ’자 모양의 터널형 도로를 만든 뒤 바다 속에서 연결하는 시공법)을 채택해 총 길이 8.2㎞로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를 시공 중이다. 또 인천 시화호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극한공법이 채택되는 분야는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성공 시공만 하면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라며 “남들이 못하는 분야에서 특화된 경쟁력을 쌓아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칼리파를 완벽하게 시공해 명성을 쌓은 삼성물산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인천대교를 준공했으며, 현대건설과 함께 수주한 아부다비 원전을 계기로 추가 수주를 모색하고 있다.
포기할 수 없다면, 경쟁력을 갖춰라
시장은 주택시장의 한계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장을 버릴 수만도 없는 노릇. GS건설은 포기하는 대신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수익을 올리는 쪽을 선택했다.
이 회사가 찾은 주택시장에서의 경쟁 키워드는 ‘그린 스마트 주택’. 친환경ㆍ저에너지 사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에너지 제로 주택을 구현하고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통해 입주자 편의를 극대화해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GS건설의 그린 스마트 전략은 침체된 분양 시장에서도 통했다. 이달 말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일산 식사지구 4,683가구에 ▦태양광 가로등과 조형물 ▦단지내 전기자동차 운행 ▦스마트폰을 이용한 세대 시스템 제어 등과 같은 첨단 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에 저층 일부 가구를 빼고 거의 모든 가구가 계약을 마쳤다. 주변 분양 단지들이 대거 미분양으로 고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과거의 주택공급 방식, 획일적 상품, 차별성 없는 기술로는 높아진 시장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특화된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기술경쟁력만이 미래 시장에서의 생존과 발전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사업 다각화로 재기 꿈꾸는 건설사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중인 중견 건설사들이 해외 및 토목사업 진출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조기 경영 정상화에 한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유가 빠른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택사업에만 안주했던 탓이 컸던 만큼 다각화된 포트폴리오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되찾고 있는 것. 실제로 주요 워크아웃 건설사들은 주택비중을 줄이는 대신 토목과 플랜트, 해외부문에 주력하고 있다.
풍림산업은 매출액 대비 주택사업 비중을 올해 50%까지(2007년 80%) 축소한 대신 공공공사 비중을 종전 20%에서 40%까지 늘렸다. 지난달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한 경인아라뱃길사업 김포고촌 물류단지 조성공사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안산-일직간 고속국도 확장공사까지 연이어 따내는 역량도 보였다. 작년 25위였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올해는 24위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
벽산건설은 올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가자마자 사업비 1조4,171억원 규모의 대곡-소사 복선전철 임대형 민자사업(BTL)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상주-영덕 도로건설공사 9공구까지 947억6,700만원에 따냈다. 덕분에 한때 2대8의 비중이던 공공(토목)과 민간(주택)의 사업비중도 55대45로 균형을 잡게 됐다.
전형적인 주택전문 건설업체이던 우림건설도 지난해 알제리 신도시 건설공사와 하수처리시설 공사 등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최근에는 세네갈 공공건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업무협약을 현지 정부와 체결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건설사가 경기 부침에도 견딜 수 있는 강한 체질을 갖기 위해서는 주택과 토목, 해외부문 등에 걸쳐 고른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주택에만 치중해온 주택업체는 짧은 기간 안에 토목ㆍ플랜트 실적을 쌓기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영속기업으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 전문가 제언 "체질 개선, 멀리 보고 전문성 키워야"
2010년 대한민국 건설산업은 유례없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주택사업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기업경영의 위기를 맞았고, 유가상승으로 해외건설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지역(중동)과 공종(플랜트)의 쏠림현상과 국내 업체간 과열경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건설업체들은 어떻게 체질개선을 해야 할까.
첫째, 더 이상 수요의 양적 팽창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인구 및 가구(家口)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주택산업의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며 토목시장도 현재의 교통 인프라 수준을 감안하면 더 이상 대형 국책사업 등 신규 수요의 등장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둘째는 건설의 고부가가치화다. 앞으로는 주택이나 토목의 건설상품 모두 에너지 절감, 친환경성, 디자인 등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단순 도급공사 방식으로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생산성 향상과 상품에 대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양적ㆍ질적 측면을 고려한 사업의 다각화다. 특정 공정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화점식 수주나 업종 다변화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특히 경기 부침에 민감한 주택부문의 한계에서 탈피하기 위해 무작정 토목ㆍ플랜트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또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 토목이나 플랜트 공사는 기술적 노하우나 해당 공사의 경험축적이 핵심 경쟁력이어서, 단기간에 시장진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 플랜트 공사 호황으로 기업간 경력직원의 모셔가기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호황이 끝나면 다시 구조조정의 아픔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업종의 다양화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단기 대응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문 업종이 있어야 하며 그 기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업종 다변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김현아/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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