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했던 올해 무더위는 산중 선방이라고 비켜갈 수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는 하안거(夏安居ㆍ여름 수행) 결제 중인 청풍납자들에게도 고역이기는 마찬가지. 윙윙거리는 소리가 참선에 방해될까 선풍기 하나 두지 않은 선방에서 선승들이 석 달간 씨름해야 했던 것은 화두 외에도 36.5도의 인간 화롯불들이 20여명씩 한 데 모여 내는 열기와 땀내였을 터.
경남 양산 영축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통도사의 암자 극락암에는 그 치열한 수행의 열기가 고요 속에 숨죽여 있는 듯했다. 선방 문을 열고 얼핏 모습을 내비친 한 수좌의 상의는 가슴팍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땀이 흠뻑 배어 있었다.
극락암 호국선원 감원(암자 주지) 혜원(惠遠) 스님은 다도실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를 가리켰다. ‘淸白家風直似衡(청백가풍직사형) 豈隨高下落人情(기수고하낙인정) 秤頭不許蒼蠅坐(칭두불허창승좌) 些子傾時失正平(사자경시실정평)’. ‘청백가풍은 저울과 같으니, 어찌 인정에 떨어져서 높고 낮음을 따르겠는가. 저울에 날파리가 앉는 것도 불허하니, 조금만 기울어져도 평정함을 잃는다’는 뜻이다.
극락암은 현대 불교의 최고 선지식 중 한 명인 경봉(鏡峰ㆍ1892~1982) 스님이 평생을 주석하며 수행정진한 곳으로, 이 글귀도 경봉 스님이 70대 때 직접 쓴 것이다. 혜원 스님은 “스님들이 더위에 지쳐도 저 글을 생각하며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으려고 치열하게 정진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원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소나무 숲의 정취가 그 열기로 더욱 그윽해진 듯했다.
유례없는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석 달 동안 화두를 잡고 정진했던 조계종의 제방 선원 수좌들이 24일 하안거 해제 법회를 마치고 산문을 나섰다. 여름 한 철 공부로 마음밭을 일군 스님들은 다시 시끄러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만행길에 나서게 된다.
전국 교구 본사에서 일제히 해제 법회가 열린 이날 오전 영축총림 통도사에서도 하안거 결제 대중과 일반 신도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가 진행됐다. 통도사 방장 원명(圓明ㆍ73) 스님은 “해제는 자신의 막힌 곳을 선지식에게 묻고 골똘히 해서 명철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해제와 결제가 둘이 아님을 상기시키면서 “곧바로 바다 속에 들어가 힘껏 물질을 해보아야지, 억새꽃이 얕은 물에 급히 흘러가는 것에 속지 말라”는 법어를 남겼다. 공부가 조금 나아졌다고 얕은 물처럼 요란한 소리 내지 말고 근본을 살피라는 뜻으로, 해제 후에도 수행의 끈을 놓지 말고 정진을 계속하라는 당부였다.
올해 하안거에 참여한 조계종 스님들은 전국 104개 선원 2,257명. 통도사에서도 본사 보광선원, 극락암 호국선원 등 6개 선원에서 300여명이 정진했다. 여름 한 철 이들이 참구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원명 스님은 그 뜻을 묻는 기자에게 “사바세계에 와서 이 몸 받은 우리가 이 세상에 나기 전에 어디서 왔으며, 살다가 가면 어디로 가는가, 그 생사 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스님들이 와서 공부하는 것이지 특별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2007년 통도사 방장으로 추대된 원명 스님은 경봉 스님 맏상좌로 출가 후 60년 가까이 거의 산문을 벗어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해왔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 원명 스님은 “조주 스님은 차도 한 잔 안 주면서 ‘차나 마시고 가라(喫茶去ㆍ끽다거)’라고 했다는데, 나는 차를 드리겠다”며 “한산과 습득이란 두 스님이 껄걸 웃는 것을 누가 능히 알겠는가(寒山拾得呵呵笑 誰能識ㆍ한산습득가가소 수능식)라는 화두에서, 두 스님들이 왜 웃으셨는지 생각해보고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이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도 동안거가 시작되는 11월 중순까지 세상을 주유하며, 두 스님이 껄껄 웃은 까닭을 찾을 터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양산=이성덕기자 s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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