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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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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완장

입력
2010.08.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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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사람들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할까. 왜 자꾸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할까. 혹시라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욕망에 숭고한 이상 같은 것이 있다면, 그러니까 국민에 대한 봉사와 헌신, 뭐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많을 텐데. 아름다운 봉사와 헌신이란 사실 알려지지 않은 자리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숭고한 것일 터이니.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더욱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치가 돈과 무관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미 아주 부자인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부자들의 돈을 더 많이 불려주기는 하겠다. 더 많이 벌고 더 안전하게 지키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권력이 필요한 거라고 믿는다면.

권력 향한 욕망과 몰염치

권력에 대해서라면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니 그 달콤하고 뜨거운 맛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작가 윤흥길은 소설 에서 저수지의 관리인이 휘두르는 완장의 권력을 해학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고작 저수지를 지키는 관리인에 불과하지만 완장의 권력이 무섭다. 완장은 그들과 그들 아닌 사람을 가르고, 무엇이든 휘두르게 만들고, 모든 몰염치와 욕망과 횡포를 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완장 하나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던 보통사람마저도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 완장이 그토록 달콤한 것일까.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한 의혹이 무성한 모양이다. 매번 그러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기사를 접하는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매번 그러하고, 매번 기가 막히다. 매번 그러하니 새삼스레 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래도 이건 너무 궁금하다 싶어 결국 글을 쓰게 만든다.

도지사였던 그분의 1년 현금영수증 사용액이 0원, 신용카드 사용액도 0원이란다.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4인 가족의 총 지출액이 그렇단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신용카드 한번 그을 때마다 다음 달이 걱정되고, 현금영수증 한 장 끊을 때는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다른 모든 의혹들보다도 이게 더 어리둥절하다가 놀랍다가 기가 막힌다.

절약해서 쓸 수 있는 연봉이 있었고, 부자인 장모님이 있단다. 이쯤 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어지지가 않는다. 절약해 쓸 수 있는 연봉도 없고 내 가족을 공으로 먹여 살려줄 수 있는 부자인 삼촌, 당숙, 사돈의 팔촌도 없는 나로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때마다 그에 관한 무수한 것들이 밝혀진다. 본인으로서는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았을 것들도 이래저래 알려진다. 무엇이 밝혀지고 무엇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아마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범칙금을 끊은 적이 있는 나는, 그때 교통경찰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져 본 적이 있는 나는, 자기 발로 청문회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들이 놀랍다. 창피한 것의 수준이 다른 그들이, 잘못한 것의 기준이 다른 그들이, 그러고도 완장을 차고 그 완장을 권력이 아니라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그들이 놀랍다.

상식 벗어나지 않은 인물을

오직 청백한 것만으로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다. 무작스러운 싸움판에서는 소심하고 착하고 약한 것은 흠이 되기도 하겠다. 강하고 결단력 있는 정치인을 원하는 것은 누구나가 마찬가지다. 다만 바라건대, 너무나 깨끗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더라도, 아무리 정치인이더라도, 그 완장, 내가 만들어줬고 우리의 돈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현금영수증과 내 신용카드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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