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 석방을 위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이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기조에 변화를 불러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을 위해 고위급 특사 파견을 검토하면서 미국의 대북기조 변화로 비춰지는 것을 가장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카터 방북단에 행정부 인사를 배제한 것도 그의 방북이 당국 차원의 대북 협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은 천안함 사태 이후 대북 제재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방침을 한국 정부에도 미리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의 방북은 지난해 8월 여기자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밟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와 비슷하다. 당시 클린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 자신의 방북이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카터 대표단도 이를 모델로 삼아 대북 접촉에 대한 도상계획을 면밀히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심스런 행보에도 불구, 카터 전 대통령이 갖는 정치적 무게감 때문에 그의 방북을 인도적 목적에 국한시킬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카터 전 대통령 측이 먼저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 방북의사를 북한이 받아들인 것도 그가 갖는 ‘상당한’ 정치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전격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카터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제네바 협상 실무주역이었던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은 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행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외교를 “공중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카터의 방북이 클린턴의 방북보다 복잡하게 해석되는 데는 카터의 왕성한 정치적 의지도 한몫 한다. 그는 강경책으로 흐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방북을 통해 경색된 북미관계를 풀어내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3월 한국에서의 한 강연에서는 “일방적 대북제재는 역효과만 낳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린턴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미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방북은 천안함 사태 이후의 한미 대북 제제 공조에 균열을 초래하고 미국의 대북기조가 타협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여지를 줄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클린턴의 방북이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으로 이어진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인적 공명심에 따른 카터의 돌출 행동을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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