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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혐의라도 법원은 여성에게 더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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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혐의라도 법원은 여성에게 더 관대했다

입력
2010.08.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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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문모(20ㆍ여)씨는 한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박모씨에게 '조건만남'을 하자고 제안해 경기 수원 소재 L모텔에서 성관계를 맺었다. 관계 후 갑자기 김모(22ㆍ남)씨가 모텔로 들이닥쳐 "미성년자인 내 동생과 원조교제를 했으니 합의금을 달라"고 박씨를 협박해 현금 150만원을 뜯어냈다. 문씨와 김씨가 미리 짜고 벌인 범행이었다.

이들에 대한 1심 공판이 그 해 11월 수원지법에서 열렸다. 문씨와 김씨에게 같은 혐의(특수강도)가 적용됐다. 최소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중죄였다. 역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모한 만큼 둘 모두에게 실형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5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여성인 문씨에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징역 3년을 초과하는 형을 선고받으면 집행유예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재판부는 "문씨의 나이가 (당시) 19살에 불과하고 1회의 범행에 그친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법정 하한(5년)의 절반인 2년6월로 작량감경(酌量減輕)한 다음, "작량감경에서 든 사유를 거듭 참조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죄의 경중을 감안하더라도, 형을 절반으로 줄여준 것도 모자라 별다른 이유 없이 집행유예까지 선고한 것은 여성인 문씨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이 남성보다 여성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벌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는 '고무줄 양형'의 사례로 지적되기도 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주요범죄에 대해 엄격한 양형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피고인 성별에 따른 양형 차이는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행정처의 김현석 정책총괄심의관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을 계간지 '형사정책연구' 여름호에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1일부터 2010년 2월 28일까지 선고된 양형기준 적용사건 2,836건(판결문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무기징역이 선고된 사건 등은 제외)을 분석한 결과 양형기준을 충족한 비율(부합률)은 89.7%에 달했다. 애초 양형기준 설정 당시에 예상한 부합률 70~80%보다 높은 수치였다. 죄목별 양형기준 부합률을 보면 횡령ㆍ배임죄가 94.9%로 가장 높았고 뇌물죄가 82.2%로 가장 낮았다.

이 수치만 보면 양형기준제가 안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피고인의 성별로는 양형 불균형이 나타났다. 특히 강도죄의 경우 여성 피고인에 대해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을 선고한 비율(불부합률)이 25.0%로 남성 피고인(13.3%)의 두 배에 육박했다. 그밖에 횡령ㆍ배임죄, 살인죄, 위증죄, 무고죄의 경우에도 여성 피고인이 남성보다 더 관대한 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표 참고)

이에 대해 김 심의관은 "양형기준 자체는 여성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적용과정에서는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양형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기준 부합률을 더 끌어올려 성별로도 공평한 양형이 적용되도록 법원과 일선판사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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