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가 무단 방북한 뒤, 어느 독자가'한 목사의 평양 기도문'을 메일로 보냈다. 인터넷에 떴다며"도저히 그냥 읽고 넘길 수 없다"고 개탄했다. 남쪽 정부를 숫제 저주하고, 북쪽을 찬양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념 성향이 어떻든 목사의 기도문으로는 황당하기 짝이 없어 대충 읽다 말고 지워버렸다. 다음 날인가,"기도문은 누군가 지어낸 것"이라며'취소'메일이 왔다. 어지러운 이념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 해프닝의 속사정보다 그 독자의 진지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한상렬 목사, 황당한 방북 언행
얼마 뒤, 한 목사의 평양 기자회견을 북한 매체가 전했다. 그는"천안함 사건은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합동 사기극"이라며"이명박은 천안함 살인 원흉"이라고 주장했다. 또"남녘 동포는 김정일 위원장님의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모양이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지어낸 거짓 기도문과 곧장 비교할 순 없지만, 그 독자처럼 진지한 이들은 거짓과 사실이 아주 닮은 것이 적잖이 혼란스러울 듯했다.
20일 판문점으로 돌아온 한 목사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 사건을 우리 국민은 어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을 먼저 떠올렸다. 1989년 3월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그의 뜻을 나름대로 이해하면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실정법 위반에 따를 고난을 무릅쓴 행동이 시대 흐름을 헤아린 전략적 선택이 아닌가 의심했다.
노태우 정부시절인 그 해 2월, 남북은 북한의 선제 제안에 따라 긴장완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총리급 고위당국자 회담에 합의하고 예비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돌출한 문 목사 사건과 팀스피리트 훈련,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으로 난항을 겪었다.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2차례 만나 자주ㆍ 평화ㆍ 민족대단결 원칙에 입각한 통일문제 해결 등의 합의성명을 발표했다. 분단 이래 유례없는 일이었다.
열흘 만에 판문점으로 돌아온 문 목사는 징역 7년을 받아 4년 가까이 복역했다. 그를 민중의 화해ㆍ통일 의지를 실천한 선구자로 우러르는 이들은 노태우 정부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기본합의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때의 6ㆍ15 공동선언에 앞서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을 구체적으로 합의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어떻든 문 목사는 대북 인식과 통일 비전에 얽힌 오랜 금기를 깨뜨렸다. 21년이 지난 지금, 한 목사의 방북은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지녔을까. 그 자신은 이명박 정부의'기만적'대북정책을 고발하고, 남쪽 민중의 통일의지를 북에 전하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내 안목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과 진보세력이 궁지에 몰릴 것을 우려해 센세이셔널한 언행으로 남한 사회에 충격과 혼란을 주려는 의도로 비쳤다. 천안함과 김정일에 관한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과장된 언어로 떠든 의도를 달리 짐작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북한의 천안함 출구전략을 위한 선전전에 앞장 선 모습이다. 무대와 배경은 북한이지만 정작 노리는 관객은 남쪽 사회이다.
이념 떠나 사실을 바로 봐야
그러나 짐짓 문 목사를 본받아 제 한 몸을 던져 얻으려던 성과는 없는 듯하다. 판문점에 마중 나온 진보세력은 100명도 안됐다고 한다. 벼르고 나온 보수세력 수백 명과 경찰 3,000명이 별 할일 없이 돌아갔다. 진보 언론도 고작 "007작전하듯 한 목사를 잡아갔다"고 푸념했을 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은"의견(opinion)은 자유지만, 사실(fact)은 자유가 아니다"는 경구(警句)를 남겼다고 한다. 영국의 진보지 가디언의 사주였던 저널리스트 찰스 스콧은"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다. 북한과 대북 정책 등에 어떤 생각과 믿음을 갖든 자유다. 다만 보수든 진보든 사실을 외면하면 어떤 고상한 명분과 주장도 쓸모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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