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온도에서 부피와 압력은 서로 반비례한다.’ 중학교 1학년 과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보일의 법칙이다. 요즘 TV 토크쇼 프로그램을 보면 이 법칙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토크쇼의 공간이 하나 둘 밀착ㆍ압축되고 있는데, 그 결과 토크의 농도가 한층 짙어졌다는 얘기다. 웃고 떠들고 약 올리고 까발리고 털어놓는 공간의 수축ㆍ확장에서 빚어지는 예능의 열역학이다.
0.1평의 토크, 압축의 미학
밀착된 공간에서 압착돼 나오는 토크의 밀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SBS ‘강심장’이다. 여러 명의 출연자가 스튜디오에 층층이 앉아 MC(강호동, 이승기)의 진행에 따라 얘기를 주고 받는 외형은 여느 토크쇼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토크가 시작되면 ‘강심장’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한 출연자가 얘기를 시작하면 카메라는 시종 그 출연자가 앉은 0.1평도 안 되는 공간만 클로즈업하는 무지막지한 몰입도를 보여준다. 이런 압력으로 추출한 토크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막 뽑은 진한 커피와 같다.
예컨대 10일 방송된 ‘강심장’은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 나르샤의 짠한 사연을 뽑아냈다. 나르샤는 “방송에서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라며 “현재 반지하 월셋방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점점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져 창피할 때가 많았다”며 “결국 어머니와 이사를 결심했고 얼마 전 전셋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말해 동료 출연진의 환호 섞인 박수를 받았다. 같은 날 출연한 신민아도 “정말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내가 예쁜 거 안다”고 말하는 강심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케이블채널 Mnet의 ‘텐트 인 더 시티’와 tvN의 ‘택시’도 각각 캠핑장 텐트 속과 달리는 택시 안이라는, 1평이 채 되지 않는 공간으로 토크쇼의 무대를 압축했다. 역시 밀폐된 공간이 갖는 토크의 압력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들이다.
점집, 사우나로… 내밀한 공간의 토크
MBC ‘무릎팍도사’(‘황금어장’의 코너)와 ‘골방밀착토크’(‘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의 코너), KBS ‘해피투게더’ 등은 외부와는 단절된 공간에서 가능한 친밀감의 깊이를 보여준다. 출연자와 MC, 또는 출연자들끼리의 심리적 거리를 제로에 가깝게 만듦으로써 농도 높은 토크를 펼치는 프로그램들이다.
스타들의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이색 토크쇼 ‘무릎팍도사’는 독특한 공간 설정이 자아내는 내밀한 분위기로 마니아층이 생길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를 총각도사 복장을 한 MC 강호동 앞에 앉혀놓고 속을 꺼내게 만든다. 카메라의 초점은 좌식 탁자를 가운데 두고 네 사람(보조 MC 2명 포함)이 차포마상으로 둘러앉은 1평 남짓한 공간에 고정돼 있는데 영락없이 점집 풍경이다. 이 공간적ㆍ심리적 밀도는 ‘저런 얘기를 방송에서 해도 되나’ 싶은 소재까지 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
‘골방밀착토크’와 ‘해피투게더’에서는 각각 다락방과 사우나라는 공간이 주는 친밀감이 토크의 진솔함을 증폭하는 효과를 준다. 친한 친구끼리나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토크쇼를 통해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 ‘해피투게더 3’를 기획한 김광수 PD는 “처음엔 시청률 부진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공간을 목욕탕으로 바꾼 뒤 출연자들이 훨씬 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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